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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김재실 시집 해설

김재실 시집 해설 원고

 

直喩와 比喩의 調和

윤제철(시인, 세계문인협회부이사장)

 

1. 들어가는 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겨울을 보내는 동안 봄을 맞이하려면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있지 않고 보다 나아지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려는 의지가 살아나 야 한다. 일상을 보내다 눈에 띄는 대상으로부터 떠오르는 시상을 만나면 시인들은 아침을 새로 여는 것처럼 눈과 귀가 열리고 남들이 겪지 않은 체험 속에서 느끼는 생각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막연하게 반복되는 시간을 만나고 보내는 생활을 보다 변화를 꾀하여 무미건조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사람들의 상상력이 아닐까? 몸은 정지되어 있다하더라도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고의 세계를 늘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나리가 울타리를 쳐서 노랗게 봄을 알리고 하얗게 가지 위에 눈처럼 쌓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초순 어느 날, 필자와는 시인의 날개를 달아준 인연으로 알고 있는 김재실 시인이 봄처럼 다가와 바쁜 일과 늘 씨름을 하면서 빚은 여러 시편을 내놓았다. 평소 말을 아끼고 생각이 깊던 시인의 시에는 삶의 편린들이 울어난 이미지가 그림같이 펼쳐져 필자의 가슴에 흐르고 있었다.

 습작기를 보낼 때 보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서 세상에 시를 내놓는다는 것이 점차 어려워져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했다는 그는 언제나 신인의 자세로 시 쓰는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시를 통하여 뱉은 말들은 행동과 일치하는 생활로 독자들에게 보이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했다.

2.

 

지금은 비어 있는 길손이지만

그 끝은 시작의 의미가 아니던가

웃을 수 있을 때 기쁨을 아는 이야기 같은

철길의 열림이여!

거기 그 길은 꿈인 듯 가슴으로 인사한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 귀중한 시간

기도하는 손길 가슴에 대고

뜨거운 가슴에 메모할 먼먼 그리움 거기

오늘을 살고 있는 이 삶이 아니던가,

임진강 푸른 물결 가슴에 드리우고

평행선 철길을 보며

천박한 내 가슴을 드러내고 싶은 그 길이었으니

오라, 오라! 기울어진 내 구두 뒤 창 같다 해도

내 이름으로 가득 채울 청춘의 고백을...

 

나를 불러 도라산 그 끝을 시작에 둠이여,

강구한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그렇게 왔거늘

임진강물은 평화의 메세지로

방문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조금만 기다리면 돼, 하고 받아온 해답을 안고

가벼운 발걸음 뒤로하며 거두는 눈물이여!

- 「도라산역에서ㆍ76」 전문

 

 눈을 감으면 보이는 가고 싶은 그 고향인데 눈을 뜨면 가로막힌 장막의 높은 벽을 본다. 기다리던 통일의 그날은 미루어지고 또 미루어지고 염원을 담은 철로가 미리부터 준비를 하고 턱 밑까지 갔다가오고 또 갔다가오고 있다. 질기고 질긴 혈연이 가슴을 앓고 세월의 아픈 흔적을 아직 지우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모습들만 아지랑이로 피어오른 뿐이다.

 언제나 떠날 건가 평양방향 저 먼 길을 바라만보다가 떨어뜨리는 고개로 돌아선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맞선 거울 안과 밖의 풍경이 상으로 맺히지 않고 뿌옇게 가려 애꿎은 눈만 비빈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허리를 하고 장애로 허덕이던 이산의 삶이 남에게 보여주기조차 부끄럽기만 한 지난 세월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기를 권하며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하고 있다. 가까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저 곳을 이번에도 밟지 못하고 그냥 가는 발걸음에 눈물이 밟힌다. 도라산역에서 소리 없는 통곡을 가슴에서 꺼내 쏟아내고 있다.

             

가지런히 꽃을 가꾸는 거기

꽃만이 아니었던 것을

봄은 이미 알았을 거다

새싹의 종기를 들여다보니  

두드러기라도 좋으니

봄을 준비하는 손길이 되어 달라고

꽃잎을 물고 왔을 제비가

나를 꽃잎에 내려놓는 구나

 

한 발 한 발  건너  올 봄이면

지금은 구름이 걷힌 파란 하늘이다

 

내 빈 손이다만

봄의 향기를 담는 것은

내 심장 안에 있는 곳이라

이미, 핀 꽃은 지지 않고

이미, 필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라

지난봄의 향기는

어떻게 산과 들을 지나 여기까지 왔을까!

 

바람 불면 꽃이 되고

노을 지면 열매 맺는 거기라

햇님을 가로 막는 산이 되면 안 돼!

꽃을 응시하는 햇님 따라

하나님은 또 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김 한번으로 만든 봄인지라

선착순 16명에게  봄을 예매합니다.

- 「예매 ․ 64」전문

 

 지구온난화현상으로 겨울철 날씨가 별로 춥지 않다보니 봄이 왔는지 눈치 채지 못하다가 은근슬쩍 여름으로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봄이 없어졌다고 한다. 꽃이 있어 눈에 띄면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생존경쟁의 틈바귀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손에 쥐어줘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우리 곁에 찾아오는 봄을 꽃에다만 맡기지 말고 누구든지 준비하는 손길이 되어 달라 애걸하고 있다. 봄의 향기를 담는 것은 손이 아니라 심장 안에 있는 곳이라며 지난봄의 향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걷히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 꽃이 피어나고 해가 지면 바로 열매를 맺는 그런 곳이 되어버려 햇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입김 한번을 불어 만든 봄을 볼 수 없다며 우리에게 알리려고 간절하기만 하다. 꼭 16명에게 한정 판매로 예매를 한다니 걱정이다. 봄마저 상품으로 팔려나가면 머지않아 그 흔한 오염된 공기마저 사서 마셔야할 판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당신의 가을에선 바람 한 점 없습니다.

세월이 가고 계절도 익어 갈 때

우리는 더 많은 말을 메모해야 했습니다.

 

사랑 이야기에

풍경 같은 진실들은

내 바람 속으로

단단한 가슴을 두드리고

늘그막에 사랑을 조금씩 지워갑니다

 

나이 들어 꿈은 작지만

작지 않았던 시절

그 그리운 시절은

더 하얗게

당신의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아, 내 사랑아!

그대의 눈보라는 그쳤지만

밀려오는 이 가을에

당신의 그리운 말 한마디가

따뜻하게 데워지는 추억입니다.

- 「천사가 된 당신 ․ 79」 전문

 

 지나간 세월이 그리운 나날이 다가올 때 마다 당신의 모습으로 나를 기억한다고 절규하는 화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가을이면 더욱 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내 바람 속으로 가슴을 두드려 보아도 이젠 사랑이 지워져 하얗게 퇴색되어간다.

 가을이 다가도록 앙상한 가지를 흔들며 날아오는 외로움의 눈보라를 견뎌냈지만 차갑게 몰려올 추위를 당신의 그리운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따뜻하게 이겨낼 수 있으련만 그 사랑은 먼 나라에서 타버려 까맣게 재가 되고 말았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가깝게 붙어 다니던 사랑하던 당신은 늘그막에 돌이켜 보는 지난날의 허상일 뿐이다. 때를 놓치고 가버린 세월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후회로 접철된 흔적을 불러보는 것이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천사로 가슴에 남아 오늘도 내일도 가슴에 묻고 사는 당신이다.

 

바람 부는 산길을 걸어 아지랑이 강물 되어 흘러가니봄이 오는 소리 들리고 있다

오면 가고 가면 오는 생의 길목에서당신을 그리워하던 가슴 속에나라고 이름 지은 황혼의 설레임

등이 가려워 손이 가도바다에서 불어오는 잔물결보다 시원할까태양에 멍든 파도가 휜 구름 밀어 올리는 것 바라만 보아도산이 되고 고도의 아침이 된다.

산새 지저귐 소리에 자장가 되어 잠이 들고다 빈 마음속에 창문을 내어초록색 덧니로 웃고 싶다

차 한 잔으로 마음의 평화를 이루던 날이 세상에 나를 지은 천사의 입맞춤 되고약수 물 한 잔으로 미소 짓는 입가는 은빛구름을 찻잔으로 마시는 듯...

이 계절을 넘으면 새싹처럼 진지할까?내 마음은 눈짓만으로도 기쁨인데새싹 피어나는 초심에는 무언의 눈물 모두 거두어연꽃을 바라보는 편안한 마음으로산사의 대나무 기도하는 소리.

- 「오는 생의 길목에서 ․ 56」전문

 

 얼어붙어있던 겨울이 녹아 모여들어 흐르는 강물소리에 봄이 오는 소리 들린다. 나만 혼자 나이를 먹는지 당신은 항상 어린 모습으로 나를 감싸고, 태양에 멍든 검은 파도가 산이 되고 이제 막 깨어나는 아침이 된다.

 비어버린 가슴 속에 창을 내어 젊은이를 내다보며 흉내라도 내고 싶다. 차 한 잔의 여유로 평화를 만나고 은빛 구름 찻잔을 타고 나른다. 새싹이 피어나던 초심에 실은 꿈들을 모두 거두어 연꽃에 띄워 보내련다.

 오는 생의 길목에서 간 세월의 흔적을 그리워하기 보다는 멀리 보내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 이제 부터라도 새로 시작해서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내 것으로 하나 손에 쥐고 흔들 힘을 얻어내고 싶을 뿐이다. 속세를 떠나 산사에 머무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욕심을 훌훌 털어내고 의지하고 싶은 대상에게 간절하게 매달려 빌어본다. 간 세월 아무리 길어도 다 버려진 것 오는 세월이나 극진히 맞이할 일이다.

 

여기 서니

눈을 감아도 볼 수 있어라.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어라.

이천여 년의 철맥과

유구한 세월은 낡아도

유대를 살피던 숨소리 들린다.

 

닿는 곳에 맥박이 뛰고

보는 곳에 근육이 일고

걸음마다 함성들...

오, 꿈속에 과거는 빛나고

벽돌 틈틈 손 떼 있을진져

깊어가는 바빌론 회로의 영광

 

하늘을 뻗는 야자수 풍요에 춤추고

멱 감는 아이들 유프라데스 강가에 노나니

번영과 함성은 세월에 묻고

향락의 날은 강물에 흘러

저 장엄한 역사의 희열

고요와 평화가 쉼이라.

- 「바빌론 ․ 16」전문

 

 바빌론은 바빌로니아의 수도로서 번영한 고대 도시이다. 바빌로니아의 상업적·행정적 측면에서 주요중심지가 되면서 바빌론은 부와 명성으로 외국 정복자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유적은 이라크의 바그다드 남쪽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다.

 바빌론에 올라서니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도도하게 유대를 살피던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과거에 빛나는 손때가 벽돌 틈에 남아 긍지를 갖고 사는 원천이 된다. 오래 전 번영과 함성은 세월에 묻어버리고 향락의 날은 강물에 모두 띄워버린 채 저 장엄한 역사를 그리며 살아도 다시금 예전처럼 살아나는 욕망의 꿈을 꾸지는 않을까? 그 들도 강자였을 때 약한 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해외관광을 떠나 멀리 떠나 있으면서 그들의 역사 속에서 강하게 지내면서 지배했던 시절의 유적을 자원으로 약하게 지내는 지금 관광수입을 올려 놀고먹는 요소로 사는 모습이 부럽다. 생존경쟁에 이기려고 아등바등 살아야하는 우리 모습이 얼비쳐 보인다.

 

3.

 

나가는 글

 

 김재실의 시를 읽다가 보면 단순하게 시 제목으로 쓰인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다. 직유와 비유를 통하여 시가 지니고 있는 모호성을 잘 살려 다양한 방향의 해설이 요구된다.

 「도라산역에서ㆍ76」에서 남북이 갈라져 대치하고 있는 현실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지만 될 듯 말듯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의 한 단면을 꼬집어내어 근엄하게 꾸짖고 있다. 헛되이 보낸 청춘을 돌려달라고 따지고 싶은 소시민의 안목을 그려내기도 한다.

 「예매 ․ 64」에서 자연의 변화로 인하여 기후의 이상변동을 그냥 눈뜨고 바라만 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기주의의 팽배로 소외되어 가는 삶의 터전에 대한 걱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방과 처방에 탓만 하지 말고 누구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천사가 된 당신 ․ 79」는 당신이란 사랑하는 연인일수 있고 아끼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이나 구하고자했던 물건을 이루지 못했거나 못 구했을 때 오는 실망이나 슬픔을 잊으려는 냉정한 결별의 선언이 서려있다.

 「오는 생의 길목에서 ․ 56」보낸 세월을 돌이켜 바라보면서 다가올 세월의 길목을 지켜본다. 그러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결국 그 버릇을 놓지 못한다. 어쨌든 살아가야 할 세월이 눈앞에 있을 뿐이다.

「바빌론 ․ 16」에서 역사 속에 흘러간 예 발자취에 빠져 들어가 그 시대를 노래한다. 대체적으로 유적은 강한 입장에서 이야기되고 현실의 이야기는 무시된다. 그럴수록 화자의 조국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묻고 싶다.

 시인으로서 냉철한 사명감을 갖고 예사롭게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도 관찰해내고 있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나 사물과도 폭넓게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역량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시인으로 알찬 시들을 모아낸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남다른 사고의 방향과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점차 깊이 있는 시의 세계로 정진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