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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방성운 유고시집 해설 - 조용한 생각

방성운 유고시집 해설

 

아름다운 시인 방성운

 

윤제철(시인, 서울초중등문학교과연구회 회장)

 

1.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말이 없고, 남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묵묵히 행동할 뿐이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든지 그가 있어주기를 바라고 서로 헤어질 때도 아쉬움을 갖게 한다.

 약속을 하면 어느 곳이라도 한 시간쯤은 일찍이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모임을 준비하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맞이하곤 하였다. 무엇보다도 남들에게 티끌만한 부담조차 주기를 싫어했다. 모임에 주제를 걸고 토론하면 많은 생각을 해서 내놓는 의견은 참여하고 있는 대상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고 채택되어 실천에 옮기게 하였다.

 너무 겸손한 나머지 소속 문인단체에서 회원들이 회장으로 추대하여 일을 맡기려고 했지만 다른 분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도와드리는 것으로 기쁨을 누렸던 그였다. 명예욕이 많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차지하고자하는 그 자리를 서슴없이 사양할 수 있었던 일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시세계에서 드러나듯 시야를 보다 높은 곳에서 넓게 바라다 볼 수 있었던 것도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한 소재가 생활주변에서 찾았다하기 보다는 자연 속에서 가까이 해오던 대상들을 벗을 삼아 대화를 나누면서 얻어진 깨달음의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원만하게 처신해나간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나 가족들이나 지인들 사이에도 한 번을 못마땅해 화를 내거나 다툰 적이 없는 아름다운 시인 방성운은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며 아버지며 친근한 동료며 친구로서 아직도 가슴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2.

 

강가를 거닐다

문득

나도 강물이 되고자 했다

날마다 잔돌을 씻겨 내리는

그런 흐름으로 살고자 했다

때론, 꽃구름 되어

떠내려가기도 하고

떼새들 자맥질에 여울지는

잔잔한 애 주름으로 늙고자 했다

풀꽃으로 흔들리는 바람을 보며

강물처럼 흐르고자 했다.

-「강둑을 거닐며」전문

 

 강가를 따라 강둑을 거닐다 보니 날마다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화자는 서로 통하는 대화 상대가 되었다. 더 이상 욕심 없이, 더 이상 서두르지 않고 그렇게 살고자 했다. 나를 버리고 모두를 택한 삶의 흐름은 강물이었다.

 하늘에 떠있는 꽃구름이나 떼새들 자맥질에 여울지는 애주름으로 살고자했다. 화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풀꽃이 흔들리는 모습에서 찾고 있다.

 우리들의 일상의 터전이 복잡하고 어려움이 많다 하더라도 굳이 섭섭하거나 불만에 빠지지 않고 순리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내고 싶었다. 어찌 보면 이미 세상 모두를 벗으로 삼아 한 조각 거슬림 없이 거느리고 살려했다.

 

가노라

그림자 하나 남겨두고

속마음 훤히 드러내 놓고

나 이제 갈까 하노라

미안하이

인사는 하지 않겠네

짧았지만

언제 또 다시

우리 만남이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의 공간이

너무 크다는 걸 알았네

잠시 잠깐 이 몸 던져

사랑했던 일

이제 모든 걸 지우려 하네

미안하이

돌아서는 아픈 마음은

말하지 않겠네.

-「편지 9」의 전문

 

 지금 이곳에 머물며 살고 있었거나 일을 했었던 자신의 흔적에 대하여 가릴 것도 없이 부끄러울 것도 없이 자리를 뜨려하는 화자의 마음은 홀가분하다. 있는 그대로를 떳떳하게 다 꺼내 보이고 의연하게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일에 마감을 앞두고 병상에서 아무런 미련 하나 갖지 않은 채 훌훌 털고 이사를 떠나가는 입장처럼 아픔을 감추고 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다시 만남이 있을지 몰라 인사를 않겠다는 화자는 울고 있다.

 잠시처럼 얼마 안 되는 세월을 보내고도 너무 큰 공간에서 몸을 던져 사랑한 생활을 지우려하는 이별의 사연을 편지라는 소재로 담아놓고 있다.

 

알 수 없네

산은 뻐꾸기 소리로 울어도

왜 목이 메지 않는지

구구구 비둘기 소리로 서럽게 울어도

왜 눈물이 나지 않는지

산의 깊이를 알 수가 없네

바람 부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산은 나무들을 키우고

풀잎을 키우고

추운 겨울이 와도

도란도란 정겹게 살아갈 수 있는지

낮게 엎드리고 있는

능선들이 부럽네.

-「알 수 없네」전문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의 소리까지 듣는다. 그러나 그렇게 뻐꾸기 소리로 오래 울어도 목이 메지 않고 비둘기 소리로 서럽게 울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지 알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람의 얇은 가슴으로는 상상이 안될 만큼 엄청나게 담을 수 있는 산의 깊이도 알 수가 없다.

 어려운 일이 눈앞에 닥쳐도 눈 하나 껌벅하지 않고 당황하는 빛이 없이 산은 나무를 키우고 풀잎을 키우고 그 큰 덩치로도 작은 것들에게 낮게 엎드리는 겸손이 부럽기만 하다. 예사롭게 등산이나 산책으로 지나칠 부분에서 까지 귀하고 소중한 삶의 지혜를 찾아낸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참고 견뎌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도란도란 정겹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가득 담을 수 있었던 화자의 가슴 또한 부럽지 아니한가?

 

여보, 방문을 살며시 열어요

야래향이 머뭇거리고 있잖아요

 

안으로 드는 달빛은 건들지 말아요

즐거워하는 바람을 어쩌겠어요

 

봄꽃이 핀들 조렇듯 나른할까요

나비가 날은들 조렇듯 야릇할까요

 

우리 첫 만남의 느낌이 저랬지요

우리 첫 키스의 촉감이 저랬지요

 

여보, 미닫이문을 살살 밀어요

야래향이 문틈을 기웃거리고 있잖아요

-「야래향(夜來香)에 취하여」 전문

 

 야래향(夜來香)은 글자 그대로 밤에 오는 향기처럼 은은한 향기를 내는 달맞이꽃의 다른 이름이다. 부부간의 따뜻한 사랑의 속삭임이 진하게 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부인에게 문을 살며시 열지 않고 세차게 열어 부치면 방에 들어오려던 야래향이 머뭇거리다가 달아나 버릴까봐 염려되고, 즐거워하는 바람에 안으로 드는 달빛 마저 건들까봐 걱정되고, 문틈으로 빠져나갈까봐 안달이다.

 야래향의 모습에서 봄꽃이 핀 나른함, 나비의 나는 야릇함을 기억하고, 첫 만남의 느낌과 첫 키스의 촉감을 찾아낸다. 임을 향하는 갸륵한 사랑 때문에 달이 뜨기를 기다려 바라보듯 몰두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처럼 화자는 야래향을 지킨다.

 

병실을 옮기었다

이곳도 하늘이 없다

무덤덤하게 벗겨진

칠과 바람이 드나드는

골목이 있을 뿐

 

나의 겨울은 이렇게

강보다 길고

강물보다 깊다

 

겨울밤은 길다

낙동강보다 더 길다

나는 바람소리로 운다

밤새 울고 또 운다

- 「병상일기・ 2」 전문

 

 병실을 옮기더라도 소수인용에서 다수인용으로 옮긴다면야 걱정이 없어도 병이 차도가 없어 중한 병실로 옮기면 심적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음산하게 느껴지기만 하는 병실은 춥고 허기진 몸을 웅크리게 한다. 한 가닥 희망을 얹어 놓을 하늘이 없는 병실이다.

 인생에 있어 이미 기울은 겨울은 봄을 기대하기엔 너무 늦은 계절이다. 그 동안 살아온 계절을 되새기며 그리워하기 보다는 남은 날들을 어떻게 추슬러야할지 화자에게 머문 시간이 길고도 길다. 그 겨울이 길다지만 그 계절의 밤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낙동강보다 더 길다. 그냥 참을 수가 없는 아픔을 바람소리로 낸다. 겨울밤 긴긴 시간을 잠자지 않는 바람으로 울고 또 울었다.

 

3.

 

 시는 시를 쓰는 시인이 자신의 모든 허물을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알몸을 드러내놓는 것과 같다. 시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하여 쓰는 산문도 아니고 읽는 이들에게 읽어내려 가면서 내면 의식의 흐름 속에 이미지화한 시어들이 스며들어 이해할 수 있는 운문이다.

 아름다운 시인 방성운은 소시민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생활을 달관한 선각자와 같이 삶의 터전을 넓고도 높게 닦아온 흔적을 시 「강둑을 거닐며」, 「편지 9」, 「알 수 없네」, 「야래향(夜來香)에 취하여」, 「병상일기・ 2」를 통하여 알 수 가 있다.

 「강둑을 거닐며」에서는 복잡하고 어려움이 많다 하더라도 굳이 섭섭하거나 불만에 빠지지 않고 순리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내고 싶어 했다.

 「편지 9」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일에 마감을 앞두고 병상에서 아무런 미련 하나 갖지 않은 채 훌훌 털고 이사를 떠나가는 입장처럼 아픔을 감추고 있다.

「알 수 없네」에서는 어려운 일이 눈앞에 닥쳐도 눈 하나 껌벅하지 않고 당황하는 빛이 없이 산은 나무를 키우고 풀잎을 키우고 그 큰 덩치로도 작은 것들에게 낮게 엎드리는 겸손을 부러워해야 했다.

 「야래향(夜來香)에 취하여」에서는 야래향의 모습에서 봄꽃이 핀 나른함, 나비의 나는 야릇함을 기억하고, 첫 만남의 느낌과 첫 키스의 촉감을 찾아내고 있다.

 「병상일기 22」에서는 그 동안 살아온 계절을 되새기며 그리워하기 보다는 남은 날들을 어떻게 추슬러야할지 화자에게 머문 시간이 길고도 길게 표현하고 있다.

 요즘 시인들이 쓴 시를 읽다가 보면 너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재가 겉으로 드러나고 말을 짜깁기하여 장난처럼 표현하여 이미지화에 실패하고 함축성의 미를 잃어버리는 형편이다.

 방성운의 시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용어 그대로 체험한 이야기를 담아내어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주고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말없이 성실하게 눈과 마음으로 보고 듣고 떠오르는 시상을 솔직하게 별다른 기교 없이 순수한 서정 시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사물을 사람과 같이 대하여 동질감으로 끌어들여 이해를 돕거나 주재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나열하여 형상화를 꾀하여 이미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주위의 작은 이야기로부터 우주의 섭리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의 넓은 영역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아직도 화자는 구수한 대화를 나누는 친근한 벗으로 마주 앉아 소주 한잔 기울이며 시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메모지를 구하는 동안 시상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써 놓고 발표하지 못한 유고시에 이 어줍은 해설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