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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신전, 아고라, 에무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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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타고 힘들었지만 알찬 이집트여행을 마치고 그리스 아테네를 향하였다. 현지 가이드가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작년 여름의 화재로 전국토의 절반이 탔다는 국내 보도는 오도였다. 한 지역의 절반을 태웠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일행은 먼저 아크로폴리스로 행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중간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었으며 폴리스라고 불렀다. 점점 시대가 지남에 따라 도시국가가 폴리스로 불리게 되어 본래 폴리스였던 작은 언덕은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비하기 알맞은 곳에 둘러 성벽을 쌓았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전시 사회였으므로 방어에 적합한 지점이 선택되었다.

 아크로폴리스 위에는 폴리스의 수호신 등을 모시는 여러 신전이 세워져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 폴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었지만 오늘날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시를 가리킨다. 아테네시의 아크로폴리스는 동서 약 270 m, 남북 약 150 m로 서쪽의 올라가는 입구를 말고는 3방향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다시 성벽을 쌓고 방비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미 파르테논 등의 신전과 현문이 세워졌으며 언덕이 미화되어 아테네의 영광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외부세력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는 언덕이 고쳐지거나 강화되기도 하였다. 198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신전으로서, 도리스식 신전으로 건축된 걸작이다. 플랜은 정면 8주식의 직사각형이며, 내부는 동서로 나뉘어 동쪽에 전면 6주의 프로나오스(전실)를 두고 3면을 열주로 둘러싼 나오스(본전)가 있고, 서쪽에는 오피스토도모스(후실)에 이어져 파르테논(처녀의 실)이라 부르는 보고가 있다. 본전에는 아테나 파르테노스(처녀 아테나)상이 안치되어 있다. 신전의 장식에는 대군상조각을 배치하고 상부 4면 외벽에는 도합 92면의 메토프(작은 벽)에 부조되어 있다. 신전의 안정된 비례와 장중함은 고전시대 그리스 정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페리클레스는 관리가 되기를 원하는 희망자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하는 등 민주정치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기원전 447년부터는 파르테논신전의 건조를 시작하였고, 아테네 시가의 미화에도 힘썼다. 북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성역 중의 성역 에레크테이온신전이 보인다. 동쪽 측면의 원기둥과 남쪽 발코니의 여신 기둥에서 이오니아식 우아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임을 하거나 모이는 장소를 의미하였다. 폴리스 시민은 공공생활을 즐겼고 하루의 대부분을 정치와 사상 등을 토론하며 지내는 일상생활의 중심이었다. 그 주변에는 관청과 신전 등 공공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민주주의를 발상시킨 곳으로 아고라의 유무가 그리스와 다른 나라를 구별할 정도였다. 로마에서는 이를 포룸이라하였다. 

 폴리스의 시민은 집 밖의 공공생활을 즐겼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아고라에 모여 정치와 사상 등을 토론하는 등 아고라는 일상생활의 중심이었다. 로마에서도 포룸이라고 부르는 아고라가 있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그리스 아테네. 투르크와 페르시아가 아크로폴리스를 침략했을 당시 최고 법정으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아테네 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 때까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리를 묻곤 했다.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되었으나 그는 이에 대하여 당당한 변론을 하였다. 이 변론은 최초의 변론, 유죄선고 후의 변론, 사형선고 후의 변론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眞髓)로서, 또한 소크라테스의 고발·판결·사형의 관련을 밝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감옥을 보기로 했다. 바위로 되어있는 굴속에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용도를 짐작하게 하였다.

 에무르 거리에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번화한 상가거리였다. 거리의 끝에는 그리스정교 건물이 서서 행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가게도 들어 가보고 물건도 사게 되었다. 그러나 딸아이의 티를 사고는 바지가 마음에 들건만 치수가 안 맞는 것인지 언어소통이 안되었는지 아쉬움을 안고 나왔다. 계산하는데 만도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가게 이름은 망고였다.  

 저녁을 현지 식으로 소고기를 갈아 포도 잎에 싸서 찐 음식 을 먹었다. 식당에서 악기를 든 아저씨가 연주를 하다가 종업원 아가씨가 총각가이드에게 노래를 청하자 노래를 하고나서 인솔자 아가씨에게 노래를 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면서 나와 일행이 되어 같이 여행을 한 정 선생님의 귀한 노래를 듣게 되어 행복하였다.

 호텔로 들어가 짐을 풀고 모처럼 산책을 나갔다. 아크로폴리스 야경과 함께 디오니소스 카페에 정 선생님 내외와 같이 들러 아이스크림을 둘 시켜 스푼을 네 개를 달라고 하였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현재 성역은 나무로 둘러싸이고 초석과 토대만이 남아 있었다. 이 극장은 기원전 6세기경에 건설된 그리스 최고의 극장이었다. 당시엔 1만 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