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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상해(상하이)에서 남경(난징)까지 - 2

상해(상하이)에서 남경(난징)까지 - 2

 

3.상해

 

 

  상해로 돌아 가야할 시간이다. 고속열차시간에 맞게 도착해야하기 때문이다. 승합차를 타고 서둘러 갔다. 이제는 쉬지 않고 바로 가는 열차를 타야했고 성도건설 유동욱사장님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가해야했다.

  먼저 숙소(萊帝恩世大酒店-RADIANCE HOTEL) 방 배정을 1026호 실로 받고 들어갔다. 이 호텔에서는 2박을 할 곳이었다. 서둘러 택시로 간 곳은 한인식당가「메밀꽃 필 무렵」이었다. 호산 정병일 사장과는 대학선후배사이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구면이어서 반가웠다. 더구나 엑스포 행사 때 한국관을 지었고 관리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한국교민단체에 깊게 관계하고 있는 분이었다.

 

 

 

  정사장이 양주를 내놓자 한식에 어울리지 않으니 막걸리로 하자고 제의했다.「국순당」에서 만든 술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끓었던 한국관의 광고멘트로 소위 텔링스토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공감을 갖고 감동을 유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문화의 조합으로 상해에서 생활하는 한인들의 어울림이 원활해져야겠다는 것이다. 다른 국내의 기업보다도 일찍이 자리를 잡고 세계의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택시로 노래방엘 가기로 했다. 외국여행에서 노래방을 가보기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우미로 온 아가씨는 우리말을 잘하였다. 이미 제주도나 서울을 다녀왔다고 했다. 여행을 위하여 말을 배웠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노래방이라서 노래가 잘 나오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으나 12시가 넘어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난방이 고장 났는지 추웠다. 티와 점퍼를 끼어 입고 누워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으나 얼마 못자고 눈이 떠졌다. 필자가 잔 방만 그랬을까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메모를 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가면서 다들 추웠던 방 이야기를 하고 나섰다. 식사를 마치고 2010상해 엑스포 중국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한국관은 한참 철거중이라고 했다. 관람을 아직 못한 중국인들을 위하여 연장하여 관람을 시키고 있었다. 관람객은 상상외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빨간색 골조로 여러 층 역사다리 모양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우릴 반겼다.

 

 

 

 

 

 

 

 

 

  중국국가관이라는 붉고 큰 글자가 눈에 뜨였다. 넓은 홀에는 천정에 기둥처럼 사각형으로 직육면체로 내민 밑바닥에는 영상화면이 움직이고 있었다. 벽면을 이용한 전시를 보고 영상화면을 보는 대형 홀에는 꽉 찬 사람들 틈에 끼어 들어갔다. 세면을 연결한 화면에는 중국의 발전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전시물들이 나열되었다. 도시계회에 따른 건축, 토목에 대한 내용이 관심을 끌게 하였다. 그리고 상당히 긴 초대형 벽면에는 연결된 중국화 그림 안에 인물이나 물체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진시황시절의 네 마리가 끄는 마차 모양이 달려 나올 듯 서있었고 조명설비면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모노레일을 타고 돌면서 조형의 숲 사이로 여러 빛깔 조명을 비춰 보여주었다. 연꽃 전시라도 하듯 둥근 온실 안에 보여주었고 그 안에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왔다. 기념품 가게에서 중국관 건물 외부모형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중국의 경제위상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을 뿐만 아니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얼굴 표정이 어둡던 그들은 밝게 웃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사우나를 하기로 했으나 관람시간이 길어져 마사지를 하기로 했다. 발과 목 마사지를 2시간이나 받으면서 푹 쉬기로 했다. 여행사관광으로 왔을 대 한 발마사지는 흉내만 내는 것에 비교하면 훨씬 잘하는 기술로 여겨졌다. 전날 밤에 추워서 못잔 잠을 대신하여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추위와 피로에 위축되어 있던 몸이 풀려 가벼워졌다. 왜 마사지를 하는가에 대하여 좀 알 것 같았다.

  남경보행로를 산책하기로 했다. 신세계백화점이 글로벌백화점으로 근업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넓은 도로에는 차량이 다니지 않고 급한 사람들을 위한 승합차와 전차가 다닐 뿐이었다. 고층건물들이 계속 이어져 서있는 곳이다. 마치 차 안다니는 테헤란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일반 가계들은 서민들을 위한 생활필수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점퍼나 와이셔츠나 티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에서 따뜻한 점퍼를 정병일 사장이 사느라고 기다렸는데 그 사이에 티를 못산 것이 끝내 아쉬웠다. 숙소 근처 시장에서 살 수 있으려니 생각한 것이 불찰이었다.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바로 사는 게 좋다는 것이다.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길 건너편 가장 높은 백 여 미터의 건물과 팔십팔 미터의 송신탑 등 고층 건물들이 기둥처럼 솟아오르는 것처럼 어둠에 갇혀 있었다. 오후 7시 반부터 시작한다는 서커스를 보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다. 저녁식사는 간단히 한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안 먹어본 현지음식을 주문하느라 시간이 무척 걸렸나보다. 코프라 껍질을 벗겨 만든 요리를 맛보았다. 그리고 오십 여도가 넘는 술을 도자기로 된 병으로 딸아 마셨다.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수민족들의 서커스가 아니고 꽤 알아주는 수준급의 서커스였다. 비용도 우리 돈으로 칠만 원 정도나 했다. 긴원기둥을 눕혀 놓고 판재 위에 사람이 올라가 묘기를 부리는 서커스나 널뛰기를 통하여 여러 사람들 위로 올라가 앉는 기술은 실로 대단하였다.

인체의 유연성에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몸을 뒤로 뉘여 다리가 머리 뒤 부분에 닿는 게 신기하였다. 사람의 팔이나 다리의 힘이 다른 사람의 한 몸을 들어 지탱할지 의문이었는데 거뜬히 해내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둥그런 구 안에서 오토바이를 여러 사람들이 일자로 나란히 타고 도는 묘기는 실로 위험하였다. 이미 세 사람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데도 다시 도전하여 실행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일일이 다 기억은 못하지만 평소의 노력으로 발휘되는 묘기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열한시가 넘는 늦은 시간이었다. 그 후에도 예정은 고스톱을 치자고 했었지만 피곤하여 취소하기로 하였다. 난방에 대한 점검을 마쳤지만 고장이 안 나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방에 대한 정서가 그런 것인지 좋은 호텔의 이미지에 의문을 남겼다. 단단히 준비하고 누웠다. 티를 하나 끼어 입고 이불을 반을 접어 두껍게 덮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피곤해서인지 푹 잠이 들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 근처 시장에 들렀다. 필요한 물건 몇 개를 사야했다. 여행을 왔는데 선물 없이 그냥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식사는 시장근처에서 전주할머니께서 운영하시는 한진관의 찌개류와 붙임 등으로 배불리 먹었다. 이제 여행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알차게 여행지를 돌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특히 호산 정병일 사장의 배려 덕분에 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토요일이라서 차량이 정체될까봐 서둘러서 다시 상해 푸동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아시아나 OZ 366기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비행기에서 이미 예약해 놓은 물건을 계산을 하고 받을 수 있었다. 면세를 하여 국내보다 훨씬 살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무사히 착륙하여 수속을 밟고 헤어지는 아쉬움의 악수를 나누고 헤어져야했다. 이번이 두 번 쩨 동행하는 여행이라 고맙고 미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