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동요학교
7월21일 아침 9시 약속한 교대 4번 출구로 가서 박수진선생님내외분과 함께 우리 내외는 승용차를 얻어타고 정문문우회에서 하계수련회를 갖기로한 음성동요학교로 출발하였다. 다른 일행은 김욱남 신구대교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에서 김태구 선생님과 김용필 선생님이 출발하여 아차산 역에서 총무인 포공영선생님과 서부교육청 이순애 평생체윤과장과 합류하여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만났다. 10시 쯤되어 모두 만나 커피를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담소하였다.
가는 길에 비가 부렸다가 그쳤다를 반복하면서 일죽으로 나가 금왕쪽으로 가다가 생극리로 가서 생리 음성동요학교로 들어갔다. 부교장이신 유정선생님을 만나 교무실로 들어가 학교 안내를 받아 일정에 들어갔다. 학교의 시설을 돌아보면서 1954년도에 개교한 오생초등학교가 폐교가 되면서 대여받은 동요학교 건물만 동그마니 있는 줄 알았더니 어린이들의 동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공간들이 가축장, 전통 생활도구들과 허브농장, 고추밭 등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각급 학교에서 동요를 체험하고 배워가는 공간으로 주민들이나 어린이들을 아끼는 많은 분들의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친환경에 관한 연구를 하시면서 이 마을의 개발계획을 확립하신 전민현 연구소장님과 모든 일을 뒤바라지해주시는 이소장님 그리고 인성동요를 만들어 보급하시는 유정 선생님은 서로 맥을 같이하여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점심식사를 이사장님이 운영하시게 될 식당에서 후하게 대접을 받게되어 얼마 송구스러웠는지 모른다.
식사후 아직 방학을 하지 못해 근무를 마치고 단신 승용차로 달려오신 서울 양평중학교 최병영 교장이 도착하였다. 회원 8명이 한 사람도 바짐 없이 참석한 모임이되었다. 고추 먹고 맴맴 윤석중 작시 동요를 낳게 한 창작의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청소년수련원, 수레외 마을 통나무집을 두루 살폈고 안동권씨 사당을 비롯 묘소들이 고스란이 모셔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을 살린 충견의 무덤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비가 오고 있어 내일 하루 더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을 보기로 하고 동요학교로 돌아와야했다. 저녁식사를 학교 교정의 한 부분에서 훈제된 돼지고기로 하였다. 맛도 맛이려니와 자연 속에서 이루진 화합의 자리는 즐겁고 행복하였다. 김용필 선생님은 내일 중국여행 준비로 먼저 상경하셔야 했다. 전소장님과 이사장님 부인께서 직접오셔서 자릴 같이해주셨고 잔손질까지 돌봐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일행은 준비한 원고를 꺼내 동요학교 야외 무대에서 앰프를 설치하고 시낭송회를 열었다. 필자는 경험을 살려 진행을 맡았다. 시인이신 김태구, 포공영, 김욱남, 유정님의 시낭송과 박수진님의 작사 동요를 불러주셨고 최병영 님의 풍물패 고사궂을 10여분 간에 걸쳐 공연해주셨다. 자리를 함께 하신 전소장님, 이사장님, 근무하시는 선생님 한 분께 순서를 드려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하였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시낭송 순서를 가졌다.
여자분들은 따로 황토방에 모시고 일행은 물레방아 옆에 숙소 마루에 앉아 동요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과 음식에 즐거움을 더했다. 난방을 해두었다가 끄고 잠을 두세명씩 나누어 들어가 잤는 데 아침에 일어나니 뭄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이사장님식당에서 하고나서 보답을 해야겠다는 의견을 모아 약소한 기금을 전달하고 기념촬영을 한 다은 큰바위얼굴조각공원으로 향했다. 무려 3천 여개의 조각들은 구가 발전과 인류를 위해 활동한 인물들의 얼굴을 큰 돌에 조각한 것이었다. 현대정신병원 원장님께서 조성한 공원은 세계적인 규모로 20여만평의 병원 부지 안에 조성되었다. 머지 않아 공항으로 30여 만평의 부지를 확보하여 이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원장님과 짧은 만남 속에서 들려주는 꿈의 실현이 다가오는 듯했다,
1박 2일 동안 이루어진 정문문우회 하계 수련회는 알차게 마무리되었다. 점심식사 전에 마무리 될까 했는 데 조각공원의 규모에 압도된 일행은 2시간 가까이 두루 살피다가 지쳐있었다. 이사장님께서 잘 아신다는 묵밥집에서 배불리 점심을 먹고 타고 온 차를 나누어 타고 헤어지기 아쉬운 정을 악수로 나누고 가각 서로 떠나왔다. 우리가 맡아 동요학교에 무엇을 해주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서울로 몸은 달리고 있었다.
2007.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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