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베트남 중부 - 다낭, 호이안, 후에를 다녀와서 - 1

윤제철 2012. 1. 10. 20:44

 

 

베트남 중부 - 다낭, 호이안, 후에를 다녀와서

 

윤 제 철

 

 

                                                                                                                                           

1. 출발

 

 

 말로만 듣던 베트남의 중부를 다녀오자는 제의를 받고 제자 정병일을 따라 나선 것은 2012년 1월 4일 오후 4시 반에 인천국제공항의 3층 M카운터였다.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가 오후 7시 반에 출발하지 못하고 승객 중 한 부부가 게이트가 바뀐 것을 모르고 늦아지는 바람에 오후 8시가 다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다낭 까지는 모두 5시간 소요되며 시차는 한국 보다 2시간 정도 늦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11시가 넘어 도착하였다. 김시후 가이드를 만나 숙소로 이동하였다. 일행은 모두 17명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6명이었다.

 다낭은 아직 공식 적인 관광지로 여행사에서 광고를 하지 않아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 중부지역 최대 상업지대로서 다른 지역 보다 활기가 넘치는 편이며, 시내 중심가에는 1천여 개의 점포가 밀집된 시장이 성황을 이루고 젊은이들로 가득 찬 노천카페에서는 록뮤직이 흘러나와 호치민 못지않은 활기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숙소는 그린 프라자 호텔이었다. 그런데 다른 11명은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예약이 잘 안되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제자의 배려에서 좀 더 난 곳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2박을 한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필자와 한 방을 쓰게 된 이상호 선생님, 제자와 김흥식 선생님, 그리고 정기장 선생님과 박종훈 선생님이었다.

 

 

2.마블산과 청룡부대

 

 

 

 

 

 

 

 

 

 

 

 

 

 

 

 

 

 

 

 

 

 1월 5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할까 하다가 그냥 식사만 하기로 했다. 모두 식사를 끝내고 호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낭시에서 12km정도 떨어진 곳에 가장 아름다운 명소로 물이 흐르듯 능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수산이라고도 부르는 오행산(투이손, 모크손, 킬손, 토손, 스엉아손의 5개 산), 대리석으로 만든 5개의 돌 언덕과 근처 100여개의 호수가 있는 마블산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산입구로 들어서면서 가게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들이 우리를 마중해주었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가파르고도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가장 잘 알려진 투이손 산을 오르면서 동굴로 된 사원과 여러 층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앞쪽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 망간대와 산 정상을 지나 바다를 내려다보는 망해대가 있었다.

 오래된 불교 사찰건물과 옆에 새워진 탑을 보았다. 마룻대와 추녀에 용이나 황새의 부조물들이 화려하게 붙여있었고 습기가 많은 기후지대라서 이끼가 무성하게 자란 벽이나 지붕이 많이 보였다. 동남아시아 역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굴 중에 대표적인 것이 현공동(玄空洞)이다. 동굴의 천정에 구멍이 뚫려 빛이 들어오고 벽은 원기둥처럼 원형의 넓은 바닥을 감싸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 부처를 비롯해 모시는 형상들의 사당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해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골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진으로 찍다가 월남전 당시 청룡부대 터가 남아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정문 기둥 두 개와 붉은 벽돌 쌓여 있는 모습이 모두였다. 그리고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는 구조물과 새로 지을 건축물 기초공사 흔적이 보였다. 청룡부대가 베트콩(월남정부에 항거한 비정규 게릴라)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던 월남을 지원한 미군을 도운 전쟁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참전했던 입장을 이해하고 피해 지역이 아니면 좋게 보고 있다고 했다.

 

 

3.호이안 구시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투본강에 정박되어있는 선상에 올라갔다. 앉아서 멀리 강 건너편에는 한국의 농촌 풍경처럼 3모작을 위하여 모내기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작은 술잔에 현지 술을 딸아 조금 맛을 보았다. 점심식사를 한 뒤에 호이안의 구시가를 씨클로(베트남 사람들이 몰고 달리는 인력거)를 타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동남족으로 30km떨어진 15-19세기의 작은 항구도시였다. 동중국해의 해상무역 중개지로 융성했던 이곳은 일본, 중국, 베트남, 프랑스, 포르투갈 상인들이 세운 다양한 건축물들이 남아 17세기말에는 약 5천명의 중국인과 1천명의 일본인들이 베트남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여러 문화가 공생하던 곳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80년 전의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어있어 실감이 났다.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는 동남아에서 단연 최고로 손을 꼽고 있었다. 중국인 마을 안에 있는 중국풍 건축의 화교회관, 복건회관에는 금산사라는 간판이 있고 같은 판 바로 뒤에는 천후궁이라 쓰여 있었다. 풍랑을 잠재우는 풍속신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했다. 출입문이나 사당 건축물은 중국양식을 많이 닮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용의 등장은 무엇 보다 우선적인 존재였다. 생활용품이 볼거리인 전가사당을 볼 수 있었다.

 볼만한 것은 운치 있는 작은 다리 일본교, 1593년 이곳에 살던 일본 사람들이 만든 다리로서 다리 왼쪽은 일본 사람들이 살았고 오른쪽은 중국 사람들이 살았다. 밑에는 하천 교각이 있고 다리 위에는 지붕이 덮혀 있었다. 다리를 건너다보니 입구에 개의 상이 앉아 있었고 출구엔 원숭이 상이 앉아 있었다. 이 것은 일본 천황의 띠가 개나 원숭이 띠가 많아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출입을 하기 위한 증서가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

 중국 가옥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다시 일본 가옥의 내부도 불 수 있었다. 창이 작아서 인지 어둡고 답답하고 많은 관광객들로 복잡하기만 하였다.

 씨클로를 타고 가다가 내리기를 거듭하면 볼거리를 찾아다녀야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일부의 건축물들은 프링스 양식이 눈에 많이 띄었다. 도로 쪽에 좁게 접하고 안으로 길게 들어가 서있는 형태와 정면의 화려함 그 것이었다. 가게나 가옥들이 도로계획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나열되어있었다. 마치 열병이라도 하듯이 열비어 있어 지나치면서 디카로 여러 장 사진을 찍어야했다.

 

 

4. 목각마을, 도자기마을

 

 

 

 

 

 

 

 

 

 

 

 

 

 

 

 

 

 그 거리를 나와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내려가 목각마을과 도자기마을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배를 타고 찾아다니는 일은 처음이었다. 목각마을은 오토바이로만 이동할 뿐 다른 이동수단이 없다고 했다. 일행은 얼마 안 걷고 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열심히 깎고 다듬는 모습들이 대단하였다.

 나무로 깎아놓은 것인지 대리석으로 다듬은 조각인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심지어 대나무 뿌리만 가지고 표현하고자하는 형태를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작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마치 가업이라도 잇는 듯이 열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다시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내려 들어간 마을이 도자기를 거의 집집마다 빗어 말리고 있었다. 발로 물레를 돌리면 앉아있는 사람은 손으로 도자기를 빚어내고 쟁반이나 주전자, 뱡, 그릇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골몰하고 있는 생활력 강한 여인들의 모습을 담고 마당에 그득히 널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