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2박3일(관동대학교 제5생활관)
동해안 2박3일 (관동대학교 제5생활관)
금년에는 자주 다녀오던 동해안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선 숙소를 관동대학 생활관이라는 색다른 곳으로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는 둔내나 속초에 숙소를 정하여 근방을 둘러보았지만 이제는 강릉 부근과 삼척의 동굴까지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1. 출발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던 중 관동대학교에서 전국교사들에게 생활관 대여에 관한 협조 공문을 맞이하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신청서에 기록하여 팩스로 보내고 시간을 기다렸다가 하루에 1만 원씩 하는 이용대금을 2박3일 용으로 2만원을 입금하였다.
학교홍보 차원에서 방문을 요청해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였다. 선정이 되어야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마감 날을 기다려야 했다. 바쁜 학기말 일정에 쫓겨 잊고 있다가 학생들의 수련회에 가서 있는 동안에 문자가 왔다. 축하와 함께 일정대로 이용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7월 28일 당일 아침에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처제와 조카가 아침 6시에 달려왔다.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6시 40분이 넘어서였다. 88대로와 중부고속도로는 평일이었고 아직은 휴가철의 절정을 며칠 남기고 있어 고속도로사정은 아주 좋았다. 횡성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8시 30분에 하게 되었다. 메뉴는 황태해장국과 간 고등어 백반을 시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자리를 잘 앉아 출구의 바람이 에어컨이상으로 시원하였다.
2. 여행 첫날
다시 시원하게 달려 양양 낙산사를 찾았다. 주차료 3천원을 냈다. 화재 이후 복원된 절을 찾았지만 두루 살피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여유를 갖고 둘러보았다. 보타전에 인사올리고 내려가 11시30분에 시작하는 봉양에 참여하여 점심식사를 국수로 해결하기로 했다. 낙산사를 찾아오신 손님들에게 무료로 내리는 식사였다.
모두가 국수 하나를 얻었는데 나는 둘을 얻어먹은 것이 화재가 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국수 종류의 음식을 좋아했던 탓일까 아직도 잘 먹고 있다. 일행은 홍련암을 보기로 했다. 아내와 난 안에 들어가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바닥에 난 작은 유리창을 통하여 바닷물이 드나드는 암자의 밑 둥을 볼 수 있었다.
의상대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젖어있던 티를 말렸다. 규모가 큰 해수관음상이 멀리 눈에 띄자 보고오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내의 청에 따라 우리 내외만 가서 보기로 했다. 보타전 옆길로 올라가 규모가 큰 해수관음상을 오려다 보며 소원을 빌었다. 해수관음법당을 내려가 부처상도 없어 의아 했는데 인사를 올리려 하는데 부처가 있어야할 자리에 네모난 공간을 뚫어 그 틈으로 보이는 해수관음관음상의 얼굴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냥 스쳐 지날 뻔한 순간이었다. 작은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 채 내려왔다.
기다렸던 처제 모자와 함께 기념품 가게에 들러 시원한 팥빙수를 먹었다. 기념품들을 둘러보다가 졸릴 때 먹기 위한 버섯 초코렡을 샀다. 아직은 점심을 먹고 얼마 안지나 주문진 해수욕이나 횟집에 들릴 시간이 아니었다. 저녁으로 회를 먹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문진을 향해 출발하였다. 해수욕장이라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가던 길에 처제가 커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슈퍼 앞에 정차하여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7번 국도를 달리면서 지난 여행들의 기억을 살려 주문진 해수욕장 이정표는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강릉을 12km앞둔 곳에서 유턴하여 5km를 다시 달려 간 그곳엔 주문진 해변관공지라고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너무 뜨거워 해수욕장을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해맞이 횟집을 찾았으나 역시 폐업 상태였다. 여러 해를 올 때마다 들렸던 횟집에서 있던 일들을 기억의 스크린에 담아 보고 있었다. 적당한 곳을 찾아 볼까하여 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연곡해변관광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해수욕장과 등대로 내려가는 길이 나있는 곳에서 정차하였다. 지중해 바닷물 빛과 버금가는 맑은 동해바다를 향하여 걸었다.
돌아 나오면서 작은 백사장을 갖은 해수욕장에 들어갔다. 마침 해를 가리는 천막도 쳐 있어 신발을 벗어놓고 바닷가에 서서 바닷물을 맞았다. 모두는 뜨거운 햇살이지만 장단지 까지 적시며 걸었다. 잠깐 시간을 보내고 나서 모래를 털어 신을 신고 나왔다. 아내는 전에 직장 동료들과 왔다가 잘해주는 횟집 생각이 나서 잘 아는 분께 전화로「영진횟집(033-662-7979, 017-370-2098)」을 알아냈다.
전화를 한 그곳에서 어느 가계에서 물어보니 주인 보다 손님이 그 길 끄트머리쯤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적지 않은 규모의 횟집이었다. 대웅약국 사장님이 소개하여 왔다고 하니까 우럭(대)를 시키면서 덤으로 여러 종류 회를 섞어 주시겠다는데 시간이 이르니 4시 10분에 먹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싱싱하고 맛있는 회를 많은 양을 주셨다. 매운탕에 공기 밥 2개를 추가하여 배불리 먹었다.
오후 6시가 훨씬 넘어 숙소인 관동대학교로 향했다. 7번 국도로 접어들어 35번 국도를 찾아야 했다. 강릉의 외각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숙소는 소나무 숲 속에 있는 종합대학교로 생활관 6개중의 하나였다. 걱정했던 방은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 침대 2개는 2층으로, 그리고 책상은 양편 2개씩 의자와 함께 놓여있었다. 출구 쪽에 옷을 보관하는 사물함 4개와 샤워실, 세면실, 화장실은 칸을 막아 편리했다. 에어컨으로 이미 시원하게 일행을 맞이하였다. 짐을 꾸려 숙소에 두고 학교구경을 나섰다. 개교 50주년 기념관 등 여러 단과대학 건물들과 잘 가꾸어진 녹지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배합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부러워했다.
참외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샤워를 하고나서 잠을 밤 9시 반쯤 지나 이층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조카아이도 이층을 쓰도록 했다. 자다가 추울 것 같아 에어컨을 끄고 문을 닫은 채 자야했다.
3. 여행 둘째 날
아침에 눈을 뜨니 4시가 좀 넘어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해 눈을 뜨니 5시 반쯤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6시가 지나 시골길 풍경이 아름다워 따라 나섰더니 원룸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을 들어섰다. 밭을 매는 할머니가 한 포기 농작물인양 웅크리고 앉아 김을 매고 있었다. 그리고 노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굽은 몸으로 어침 일을 나섰다. 어디를 놀러 갔다 오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앞다리로 머리를 긁고 있었다. 방학을 맞은 원룸들은 모두 비워 활기를 잃고 새 학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많은 생활관에다 원룸들이 엄청나게 많아 놀라울 뿐이었다.
넓은 논을 가로 지르는 길을 따라가면서 제초기로 논두렁길을 내는 할아버지를 발견하였다. 거의 다 마치시고 나오시는데 다른 이랑의 것 보다 일찍 자란 벼 포기를 가르치며 여쭈어 보니 도회지에 나가있는 자식들 것으로 지은 벼들이었다. 종자가 달라 더 빠르고 농약을 치지 않았다고 하신다. 내다파는 것들은 농약을 많이 뿌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야 쌀알이 희고 윤이 난다는 것이었다. 쌀을 사먹는 사람들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 하셨다.
도로로 나와 가로 등을 올려다보니 능수화가 은행나무를 타고 올라가 들판에 나팔을 불고 있었다. 도로변 밭에는 흰색 파란색 도라지꽃이 피었다. 돌아서 대학교 캠퍼스에 다시 들어섰을 때는 숲길에서 나무냄새와 흙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있어 나무들이 잠을 깬 것을 알렸다.
아내가 같이 따라나서려다 말았다는 말을 듣고 같이 나갈 걸 후회하였다. 7시가 넘을 무렵이었다. 승용차로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마트를 찾았다. 큰 병 생수와 우유 100cc 한통을 샀다. 아침식사로 대학교에서 제공한 롤케익을 과일과 우유를 함께 먹기로 하였다.
오늘을 강릉역에서 삼척역까지 바다열차로 타고 가서 삼척에 있는 환선굴을 보기로 하였다. 강릉역을 일찍 가야하는 이유는 바다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전용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임박하면 세울 자리가 차서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릉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40분이 넘어서였다. 겨우 빈자리가 있어 세우고 대합실에서 10시 반 차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바다열차 특실2호차 15.16,17,18을 예약해놓고 있었다. 1인당 15,000원씩 하는 운임을 내야한다. 10시30분에 강릉을 출발하여 11시50분에 삼척에 도착하는 열차였다. 바다를 향하여 앉는 좌석을 이열로 배치시켜놓았다. 승무원의 진행으로 방송을 통하여 승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무 부담 없이 이끄는 대로 신청곡을 틀어주면 들어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강릉, 정동진, 묵호, 동해, 추암, 삼척해변, 삼척역으로 이루어진 노선이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모든 시름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겠다는 명품열차라 자칭하고 있었다.
동굴을 구경하겠다고 별렀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삼척역 앞에 서있는 환설굴과 대금글을 왕복하는 버스가 예약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시내에서 먹고 갈까하다가 동굴입구 쪽에서 먹고 들어가기로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조금 기다려야했다. 점심은 산채비빔밥으로 먹고 동굴로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급해 모노레일로 가는데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뜨거운 날씨였지만 아무도 짜증을 내는 일이 없었다. 1시간이나 걸린다는 동굴을 2시가 되어 겨우 들어갔다. 에어컨이상으로 시원한 동굴은 규모면에서 대단한 것이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했고 한 시간을 잠시도 쉬지 않고 걸어야했다. 동굴의 중앙에 흐르는 계곡의 찬물로 내부는 끊임없이 시원하다 못해 춥기만 하였다. 동굴 밖에서 택시기사님이 기다리셨다가 삼척역 앞에 4시10분에 출발하는 바다열차를 태워주시기로 했다. 예정 보다 늦어 3시20분쯤에 택시가 출발하였다. 빠른 속도로 서둘러 주신 기사님 덕분에 시간 안에 도착하여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바다열차는 특 1호실 1,2,3,4자리에 앉았다. 강릉역에 가는 동안엔 여자 승무원이 진행을 맡았다.
바다열차를 이용한 승객에게 지장된 명소를 방문하면 50프로 활인 혜택을 준다고 하였다. 승용차를 타고 오죽헌을 찾기로 했다. 혜택을 받아 5,500원의 입장료로 들어갔다.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를 오죽이라 하는데 신성한 곳이 아니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고 했다. 이율곡선생의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가 태어나신 집이 오죽헌이다. 그분의 작품인 조충도가 입구에 게시되어 있었다. 오죽헌 앞뜰에는 목백일홍인 배롱나무가 그 당시에서 지금까지 꽃피우고 있다. 모자지간에 역사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그 터전이 아닌가 싶었다. 저녁을 먹기 위하여 순두부음식점이 몰려있는 단지로 왔다. 400년 전통의 순두부집을 찾았다.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는 평을 할 만한 식당이었다.
그리고 숙소에 일찍 돌아가 봐야 컴퓨터나 텔레비전이 없는 곳이어서 별 볼일이 없어 경포해변을 찾았다. 모래사장을 걷다가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까지 모래를 밟고 걸어갔다. 여성 예술단의 공연과 명창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역자치단체에서 기획한 공연을 이미 7월24일부터 공연하였던 것이다. 늦게 자리한 공연이었지만 집중할 수 있었고 안정된 정서를 되찾은 시간이었다. 밴드와 가수의 노래가 귀를 자극하면서 8시가 넘어 어두워진 경포해변을 뒤로 하고 숙소로 향해야했다.
3.여행 셋째 날
아침 일찍 나서려는 나에게 20분후에 들어와 같이 산책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첫날 돌던 코스로 덜려는 내 앞에 외국 소년소녀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건물 앞에는 세대의 대형 버스들이 서있었다. 일본을 비롯 인도네시아 등 국제적인 행사가 있을 모양이었다. 좀 더 나와 보니 더 많은 버스들이 줄 서있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아제 아침에 메모해놓았던 것을 손질하였다.
다시 들어올 때 준비가 다된 줄 알았더니 그 후 30분 후에나 함께 나설 수 있었던 시간은 7시나 되어서였다.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나섰다. 시골길을 좋아하는 아내는 흡족한 표정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많은 원룸 단지를 돌아서는 데만 15분이 걸리자 멀리 논으로 도는 것은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 마트에 들려 아침 먹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
승용차로 돌아왔을 대는 외국 소년소녀들이 많이 나와 뛰어다니고 있었다. 케잌을 사러나가다가 떡집을 발견하였다. 이제 막 쪄 나온 찹쌀 영양 떡이었다. 6천원어치와 강원도 송편을 4천원어치를 샀는데 양이 엄청 많았다. 조금씩 소매로 팔지는 않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만 팔았던 것이다. 마트에 들려 우유와 생수를 샀다.
숙소로비에는 외국 소년소녀들로 가득 줄을 맞추어 서있었다. 아침을 따듯한 떡과 우유 그리고 과일로 먹고 나설 준비를 하였다. 조카아이가 내일 새벽에 일본여행을 떠난다고 하였다. 더구나 어제 저녁부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도 들려야 했던 것이다. 어디를 들렸다가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냥 바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9시30분쯤 체크아웃하고 출발 하였다. 관동대학교의 관리자 분께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평창 휴게소에서 잠시 커피 한 잔하고 쉬었다. 도로사정은 양호하여 정상속도이상으로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다시 여주 휴게소에서 맨손 체조와 걷는 것으로 몸을 쉬었다. 점심을 과천에 있는 궁중칼국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중부고속으로 들어와 동서울 톨게이트로 나와 판교방향으로 가다가 성남방향으로 나와 세곡동사거리를 지나 양재방향으로 가다가 과천방향으로 나오면 막히지 않고 곧장 달릴 수 있는 길이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한 시간이 12시 45분쯤이다. 4인분을 시키고 추가로 사리 2인분으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 남은 떡과 집에 사놓은 단 호박을 나누고 서둘러 처제와 조카이이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