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대조영촬영소, 오죽헌, 경포대와 경포대해수욕장

윤제철 2007. 8. 3. 20:34

대조영촬영소, 오죽헌, 경포대와 경포대해수욕장

 

8월1일

 

아침을 늦게 먹고 벼르던 대조영촬영소를 찾아 갔다. 고구려의 유민을 이끌고 강대한 나라 발해를 세워 2백년이 넘도록 만주지역을 포함한 광활한 영토를 누릴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던 대조영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 촬영소였다.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청해왔던 필자는 그장면이 생생하였다. 고구려 관아를 비롯하여 당나라 저잣거리, 고구려 저잣거리 등 여러 장면을 찍은 세트가 놓여 있었다. 무려 2만3천평의 규모로 한화건설과 합작으로 추후에 까지 이용효과를 마련하고 있다.

일행은 경포대를 찾아가다 오죽헌을 들려야했다. 출구로 부터 넓게 펼쳐진 유도 공간에 심어진 정원수들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신사임당이 아들인 이율곡선생을 낳은 곳이 오죽헌이었다. 이율곡의 초상을 모신 곳이 문성사였다. 이율곡기념관을 비롯 강릉기념관이 세워져 있었다. 행운이었을까?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맷돌의 손잡이 어처구니나 옷깃, 오지랍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순간을 맞기도 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문화체험을 위해 참여하는 모습이 눈잎에 다가왔다.

경포대를 눈앞에 두고 사촌 처제의 전화를 받았다. 저녁은 속초에서 들자는 것이었다. 시간은 오후 5시가 넘고 있었다.  경포대 정자 구역 안에 신사임당 동상이 설치되어 있었고 충혼탑을 볼 수 있었다. 소나무와 어우러져 정자의 멋을 풍기고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호수처럼 파도도 없이 안정되어보였다.

경포대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리를 깔고 앉아있다가 고운 모래 백사장을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발을 걷어올리고 걸었다.   

냉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잉크빛 파란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일행이 걷는 걸 보고 따라 나섰다. 딸아이는 남자친구아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모래에 적은 것을 핸드폰카메라로 찍어 보내고 있었다. 길게 뻗어있는경포대해수욕장을 나오면서 우리은행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뽑았다. 그리고 직무연수 참가비를 뒤 늦게 계좌이체하였다.

길은 막혀 휴가철을 실감하였다. 저녁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는데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니 답답하였다. 오후 8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대게를 먹자고 노래하던 딸아이의 소원을 풀어주겠다며 대게집으로 들어갈 때 비가 조금 떨어지고 있었다.  시장해서 인지는 모르나 이제껏 맛보던 대게에 비해 훨씬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아무리 산다하더라도 너무 비싼 것을 시키지 않았나 아내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필자는 딸아이와 함께 먼저 숙소로 돌아왔으나 아내와 처제는 바닷가 산책을 밤늦게 나갔다. 먼저 샤워를 하고 이를 닦은 다음 먼저 잠자리로 들어갔다.

 

2007.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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