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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창작시

월문리 월문리 윤제철 아침은 여전히 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혼자 나선 낯선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옥수수며 콩이 손을 흔들더니 포도 파란 송이가 포장 속에서 늦잠을 청하고 넓게 자리를 차지한 파들의 정렬로 풍기는 그들만의 함성을 들려주었다. 이맘때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고 서서 오.. 더보기
불암산 불암산 윤제철 바위산 정상에 힘들여 올라 가을 한가운데를 내려다보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실낱같이 보일 듯 말 듯 누렇게 바랜 빛을 띠고, 태극기 휘날리는 바위에 서서 발아래 흐르는 지난날의 迂餘曲折 한줌 움켜쥐고 허공에 멀리 던져버렸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긴 하였어도 내려갈 땐 어떻게 .. 더보기
승리전망대 승리전망대 윤제철 여기는 중부전선 최전방 대성산 오성산이 마주보는 품 안에서 아직도 가시지 않은 2만 희생군의 피비린내 나는 저격산을 에워싸고 남북의 한계가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는 오직 승리뿐 한가운데 강 남대천이 폭4m에 담은 울분을 삼키며 흐른다. 높은 봉우리를 끼고 서있는 .. 더보기
산사랑 산사랑 윤제철 산 속에 숨어있어도 다녀온 사람들 입을 통해 강남 비싼 식당 다 놓아두고 먼 발길을 찾게 한다. 어머니 손 된장, 호박잎쌈 밥을 가득 넣어 터진 입은 맛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맛을 내는 곳. 산나물로 차린 상에 낯익은 얼굴이 보이고 정 고인 대화를 만나면, 마음의 눈이 열려 나무도 보.. 더보기
기억 기억 윤제철 시키는 부모님 말씀대로 몇 가지 안 되는 일들만 하던 어린 시절 기억은 작은 것까지 떠오르는데, 많아지는 여러 가지 틈바귀에서 일 눈치, 사람 눈치 보며 갇혀버린 지금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생각들을 한꺼번에 행동으로 옮기려니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써온 머리도 낡아 몇 날 며칠.. 더보기
아버지 아버지 마음 편하면 아무 생각도 없다가 내가 감당 못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떠오르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봐 마음 졸이신 아버지.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아이처럼 멀리 떨어져 자식 낳고 살아도 늘 걱정.. 더보기
어머니 생각 어머니 생각 윤제철 고통을 덜려고 모신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자식들의 말을 귀로 들으시며 눈과 입을 마음대로 쓰시지 못하고 봉한 채, 온 몸을 파고드는 병 세포들의 난동 때문에 고통을 신음으로 토해내시며 보내시던 마지막 밤 어머니 모습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 복수가 차올라 호흡하기조.. 더보기
빈집 빈집 윤제철 바로 들어오실 줄 알고 비워둔 방에는 문을 열어 환기를 바라는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로 사랑받던 가구에 담긴 널브러진 옷가지와 냉장고에 꺼부러진 음식물은 궁금해 뒤늦게 찾아온 주인의 자식들을 원망하고, 나무로 만든 식탁이나 의자는 지친 앙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