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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돌아올 수 없는 길 - 故 채수영 시인을 추모하며

 

돌아올 수 없는 길

  - 고 채수영 시인을 추모하며

                                                                                                                                           윤 제 철

 

 함께한다는 것은 인연의 시작이다. 자주 접촉한다는 데서 공유하는 생각들로 인하여 믿음이 생겼고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그러한 의지가 함께 하지 않아도 하던 일에 관심을 놓지 않음에서 끊이지 않고 연결된 고리가 되었다.

 채수영 시인은 이야기의 서두처럼 그렇게 지내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우리 곁을 떠났다. 큰 수술을 받았을 때도 병원에 갔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타협을 피해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려고 애를 썼었다. 모두에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겉으론 그랬어도 속정이 두터운 어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흥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였고,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였던 그는문학세계가 월간 종합문예지로 창간되어 뿌리를 내려 가던 초기에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데 편집주간을 맡아 김천우 발행인을 돕는 일에 앞장서주셨고 외부의 의견이나 입장이 서로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경우에도 굳건하게 막아내신 선봉장이셨다. 항상 정의 편에 서계셨고 불의를 보시면 좌시하지 않고 아예 발을 못 붙이게 하셨으며 한국문학의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열정적으로 발휘하셨다.

 편집주간을 고만 두신 후에도 다른 곳에서 일을 하시면서도 관심은 떠나지 않았다. 직장을 퇴임하신 후 후 경기도 이천에 채수영 문학원 문사원(文士苑)을 열어 시창작 강의를 개설하셨고 한국문학사에 유래 없는 6천수의 시를 창작하신다는 목표를 세우고 혼신의 노력으로 뜻을 이루셨으나 건강을 잃고 말았다. 목숨하고 바꿀 만큼 시를 사랑했었다.

 일 년에 두 번씩 전, 후반기로 나누어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거행되던 월간문학세계신인상 시상식에 참석하셔서 문인으로 출발하는 수상자들에게 문인의 지침을 들려주셨다.

 그중에 20197월에 있었던 지령 300호를 맞은 월간문학세계발간 기념과 함께한 시상식에서였다. 채수영 선임 편집주간은 연단에 올라서 발행인에게여린 여자의 몸으로 어려운 문예지 출판에 나서던 당시 어떻게 감당하려 뛰어드느냐며 말려야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뿌리치고 오늘까지 버티고 온 업적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꿋꿋하게 한국문학을 빛내는데 앞장서주길 바란다. 오늘 저녁에는 막걸리 한잔 마셔야겠다고 정성어린 축사를 남겼다. 그리고 그해 12월 한 번의 시상식을 더 갖고 코로나 19로 재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병원치료를 접고 집으로 들어가시던 날 전화통화는 그분과는 마지막을 고하는 대화가 되고 말았다. 호흡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에도 전화를 받아주셨다.

「자주 전화도 못들이고 죄송합니다.,

아니 뭔 소리를,

월간 문학세계를 잘 지키겠습니다.,

압니다.

평소처럼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시다가 전화는 끊겼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쳐지면서 정신은 혼탁해졌다. 그중에 필자의 시집을 내면 축하의 글을 써주신다고 기다리셨는데 부응해드리지 못하고 만 것이 가슴 아팠다. 그 후 몇 달을 더 계시면서 시 5편을 월간 문학세계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20211031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문상을 병원으로 찾았을 때 마침 자리에 계셨던 몇 문인을 만났다. 가까이 지냈던 두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겨우 자리를 떠나올 때쯤 기억이 찾아왔다. 아마도 월간문학세계를 함께 했던 추억에 발길을 멈추셨던 까닭이다. 이렇게 인연이 끝난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겠다. 필자가 창작생활을 하는 한 인연은 지속되리라 여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