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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이상구 시집「서리꽃」서평

 

이상구 시집서리꽃서평

 

시인의 사랑과 자아성찰(自我省察)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는 걸 알면서도 양심을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상상력을 갖추고 티 없이 맑은 영혼을 지닌 시인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었다. 자주 만나다가 그렇지 못했던 코로나19 동란을 무릅쓰고 한 끼의 식사를 주문 배달하여 나눈 자리에서 그 와중에 심경을 토로한 시를 묶어 시집을 내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원고가 담긴 봉투를 주셨다.

  같은 또래의 나이에 생업을 퇴임하고 쉬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리셨다. 뿐만 아니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못한 일들마저 아직 손에서 놓으신 것이 없다.

  ()를 쓰시기 이전에 벌써부터 소설(小說)을 등단한 소설가로써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하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3(三多)를 실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인생 2모작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시들은 1부는 서리꽃, 2부는 하얀 웃음꽃, 3부는 달려만 가는 세월, 4부는 켜켜이 쌓이는 그리움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상구 시인의 시를 먼저 읽을 수 있는 영예를 기쁘게 생각하며 몇 편의 시를 만나면서 시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2. 시인의 사랑과 자아성찰(自我省察)

 

사랑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풀어야 한다.

 「서리꽃에서 맺은 정이 식어가는 화자의 심난한 내면의식의 흐름을 속속들이 파헤쳐 응어리를 쏟아내고 환영(幻影)에서 소소한 것에 까지 잘해주지 못한 것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슴을 아파하며 깊은 반성에 빠진다.

 「소망에서 당신을 알고부터 알 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알기 전 까지 몰랐던 까닭에 다하지 못한 사랑을 후회했다.아침산책길에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도 없이 살면서 소통이 얼마나 생활에 중요한가를 모르고 가슴에 묻어두기만 한 과거의 어리석었음을 후회하였다.

 

은빛 억새 율동 따라

풍겨오는 늦가을 내음

시리도록 투명한 파아란 하늘을

잿빛으로 덮어

 

소리 없이 내린 밤비

비에 젖은 낙엽을

보송보송 말려주려는

따스한 햇살 밀어내고

싸늘하게 부는 바람에

바르르 떠는 낙엽이

꽃비처럼 켜켜이 쌓여

 

빈 거지 붉게 물들이고

수정처럼 반짝이는

하얀 서리꽃이 피었다

   -서리꽃전문

 

  서리꽃은 유리창에 서린 수증기가 얼어서 꽃처럼 엉긴 무늬를 일컫는다. 늦가을 내음이 파아란 하늘을 잿빛으로 덮어 내린 비에 젖은 낙엽이 쌓여 하얀 서리꽃을 피웠다. 한 해를 살아야하는 화자는 가을이 되어 함께 했던 낙엽이 떨어지자 그립고 외로움으로 채워진 가슴에 눈물은 쌓인 낙엽에 떨어져 비가 되었다. 늦가을 추운 날씨로 하얗게 핀 서리꽃을 예민한 감각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은유한 감성 시로 승화되었다.

  서리는 밤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지면이나 땅 위의 물체 표면에 닿아서 잔 얼음으로 부옇게 엉긴 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짠하게 한다. 절제된 시어의 결합은 가지에 맺은 정이 식어가는 화자의 심난한 내면의식의 흐름을 속속들이 파헤쳐 응어리를 쏟아내는 표현전략을 성공하고 있다.

 

달빛 받아

창에 비친 댓잎 그림자

마른 바람결로

흔들릴 때마다

 

안개처럼 자욱이 서린

애틋한 흔적들이

소소한 것에도

눈에 밟힌다

 

가슴 깊이 고였던

그리운 눈물이

새록새록 솟아오르면

 

조용히 방에 들어와

처연한 얼굴로

말없이 서 있는 당신 모습에

하얗게 지새우는 밤

   -환영(幻影)전문

 

  환영(幻影)은 공상이나 환각에 의하여 눈앞에 있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댓잎 그림자가 흔들릴 때 애틋한 흔적이 눈에 밟히고 가슴에 고였던 눈물이 솟아오르면 처연한 얼굴로 서있는 당신 모습에 지새우는 밤을 읊고 있다.

  어려웠던 한 생애를 함께 하다 먼저 간 부인을 그리워 애틋하게 부르다 눈앞에 나타나면 그날은 슬픔을 가슴에 새겨야 했다. 화자가 생기를 잃으면 힘을, 방황하면 손을 내밀었다. 화자가 갈길 잃으면 등불로 바라만 볼 수 있어도 행복이었다.

  첫 연에서 어려웠던 생활환경을, 둘째 연에서 고통을 무릅쓴 희생, 셋째 연에서 몰려오는 그리움, 처연한 모습으로 서있는 환영(幻影)은 소소한 것에 까지 잘해주지 못한 것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슴을 아파하며 깊은 반성에 빠진다.

 

나는 알았어요

당신을 알게 되면서

사랑이 무엇이며

행복도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요

행복을 누리게 되니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요

당신과 한 마음으로

의지하게 되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알아

건강을 챙겨주어야 되겠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일지라도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목숨을 다 바쳐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소망전문

 

  소망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모르고 살았다. 아는 것이 없으면 모른 것이 없다는 것처럼 당신을 알게 되면서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하나인 당신을 화자는 좋아했고 믿었다.

  당신을 알고부터 사랑과 행복을 알았다. 그리고 행복은 시간이 빨리 갔고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목숨을 다 바쳐 함께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 그뿐이랴 어떤 것을 다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든 알아두면 좋다는 것을 공부를 해도 알 수가 없던 것을 당신을 알고부터 알 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알기 전 까지 몰랐던 까닭에 다하지 못한 사랑을 후회했다. 화자를 훤히 들여다보며 이끌어준 당신만큼 진정 바라고 원하는 상대가 또 어디 있으랴

 

아직 차가운 이른 봄 아침

호숫가 의자에 앉아

 

햇살에 반짝이는 보석이

일렁이는 물결을 타는

모습을 보며

 

찾아주는 한 사람 없는

적막한 공원 물가

흔들리는 메마른 갈대를

 

지난 날 가슴에 묻은 채

무심히 세월을 보내다가

 

이제 와서 너를 다시 보니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겠구나

   -아침산책길전문

 

  대공원 아침산책길을 거닐다가 호숫가 의자에 앉았다. 차가운 이른 봄 공원 물가 메마른 갈대를 바라다본다. 무엇에 그리 쫓겼는지 마음을 두지 못하고 외면하다 이제야 마주하는 화자는 미안하기만 하다. 찾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물가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를 비로소 알았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도 없이 살면서 소통이 얼마나 생활에 중요한가를 모르고 가슴에 묻어두기만 한 과거의 어리석었음을 후회하였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마음속으로 되뇌며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을 가슴에 담았다.

  화자는 관찰로 감각이 열리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갈대를 자신으로 여기며 대화를 시도하였고 갈대의 음성이 귀에 들렸다. 그리고 갈대에게 자신의 이야길 해주기를 청하고 있다.

 

자아성찰(自我省察)

 

  자아성찰(自我省察)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반성하고 살피는 것이다. 내면의 미세하고 부족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자신과 직면해볼 필요가 있다.무덤에서 약은 척하지만 제 꾀에 빠져 꼼짝달싹 못하고 사면초과로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준엄하게 꾸짖고산사(山寺)의 밤에서 풍경소리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기운을 떨쳐내고 자비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타향살이에서 화단에 플라타너스 가로수 낙엽이 쌓이는 움직임은 모정이라는 정자 위에 앉은 노인처럼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 형편이다.낙화(落花)애서 꽃이 지면 벌 나비가 끊긴다는 상통하는 바가 크다. 또한 꽃이 지면 이슬만 젖어도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다.신기루에서 신기루인줄 알면서도 그 것을 목표라는 큰 그림으로 그려놓는 모순을 자행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삶이 어려웠던 시절

숨 쉬고 마실 수 있는 환경

소중함 모르고 착각했었다

 

미세먼지 폐수로

오염된 공기와 물

마스크와 생수로 살아야 하는 세상

 

편리와 물질의 욕망이

히죽히죽 웃으며

대량 소비와 손잡고

뒤에서 무덤을 파고 있다

   -무덤전문

 

  이 시 속에 무덤은 송장이나 유골을 묻은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잃어가는 아픔이다. 숨 쉬고 마실 수 있는 환경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물을 사먹어야 하고 공기마저 그렇게 될 거라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썼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에 쫓겨 공포에 떨며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있다.

  편리와 물질의 욕망은 대량소비와 손잡고 모든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 멸망의 순간을 재촉하는 것이다. 무사안일하게 문명의 발달만 추구하다 밑바탕까지 갉아먹으면서 존재할 자리마저 스스로 버리고 만다.

  화자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약은 척하지만 제 꾀에 빠져 꼼짝달싹 못하고 사면초과로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높은 산봉우리 겹겹이 둘려진

깊은 산골 좁아진 하늘

 

길게 물든 노을 사그라지고

서산에 일찍 해져

산새들이 둥지 찾아 떠나자

비구름 퍼지면서

주위가 무거운 어둠에 눌려

고즈넉한 정적에 휩싸여 갔다

 

은은히 들리던 독경 소리 끝나

한쪽 귀퉁이에 떨어진 객사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흘러간 머언 세월 넘어

살포시 떠오르는 님

그리움에 잠 못 이룰 때

 

한 줄기 스쳐가는 소슬바람으로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나그네는 돌아눕는다

   -산사(山寺)의 밤전문

 

  산사(山寺)는 산 속에 있는 절이다. 깊은 산골로 들어갈수록 하늘이 좁다. 노을이 사그라지고 산새들이 둥지 찾아 떠나면 주위는 어둠에 눌려 산사의 밤은 고즈넉하다. 산사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설정한 1연과 2연이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공감을 얻기 위해 독자들을 전제된 조건으로 끌어드리고 사찰의 정황을 낱낱이 파헤쳐 밝혀준다. 독경소리 끝나고, 떨어져 있는 객사 가랑비 낙숫물소리, 살포시 떠오르는 임 그리움으로 소슬바람이 흔드는 풍경 소리가 잠을 못 이루게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일반 사회를 벗어나 풍경소리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기운을 떨쳐내고 자비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풍경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일렁이는 온갖 잡념과 상념을 가라앉히는 소리로, 그리워해도 좋을 산사(山寺)의 소리로 이 시는 귀결된다.

 

4층 식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네모진 유리창 너머

도심 속 작은 휴식 공간

 

오고가는 행인에 환한 미소를 주는

들국화 피었던 화단에

한 달 두 달 내려 앉아 쌓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낙엽

 

차가워진 서릿바람 볼 때마다

타향살이 서러운데

사진틀 속 그림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이

채워진 족쇄 때문에

 

갈 곳 없어도 가야하고

오라는 곳 있어도 가지 못하는

모정(茅亭)에 앉아 있는 두 노인

헐벗는 나뭇가지만 바라본다

   -타향살이전문

 

  타향살이는 자기 고향이 아닌 다른 고장에서 사는 것이다. 네모진 유리창 너머 작은 휴식 공간은 들국화 피었던 화단, 그곳에 쌓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낙엽을 본다. 추워지면 타향살이 서러운데 사진틀 속에 그림마냥 채워진 족쇄처럼 갈 곳 없어도 가야하고 오라는 곳 있어도 가지 못하는 정자에 앉은 두 노인 모습이다.

  시는 대부분 비유에 의한 묘사라고 볼 수 있다. 매체의 생긴 모습이나 소리, 또는 움직임이 이야기하고자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네모진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들국화 피었던 화단은 같은 모양 네모다. 그 화단에 플라타너스 가로수 낙엽이 쌓이는 움직임은 모정이라는 정자 위에 앉은 노인처럼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상상력은 결국 타향살이를 주제로 스토리를 구상했던 것이다.

 

해가 지면 밤이 오듯

꽃이 시들면

한두 마리 벌 나비 찾았다가

빈손으로 떠난 후

발길 끊겨

 

이슬만 촉촉이 젖어도

무게를 지탱 못해

바람 없이도 지고 나면

 

화려했던 지난 날 아쉬움도

모두 사라져

남는 것은

 

메마른 줄기에 매달렸던

흔적이 주는 상처뿐

   -낙화(落花)전문

 

  해가 지면 밤이 오고 꽃이 지면 벌 나비 발길 끊겨 이슬만 젖어도 지탱 못하고 져버린다. 화려했더라도 남는 것은 줄기에 매달렸던 흔적이 주는 상처뿐이다. 해도 꽃도 오래도록 영원하지 않다. 화려함은 사라져 상처만 남는다.

  해와 밤, 꽃과 벌 나비의 관계를 통한 전성기와 몰락기를 통한 사람들의 삶을 은유한 기법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해가 없으면 밤이 온다는 비유는 꽃이 지면 벌 나비가 끊긴다는 상통하는 바가 크다. 또한 꽃이 지면 이슬만 젖어도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다.

  낙화(落花)는 꽃이 시들거나 말라서 떨어짐을 말한다. 메마른 줄기에 매달린 흔적이 주는 상처만 남기는 낙화(落花)는 모든 사물의 최후를 일컫는 대명사다. 감성의 완급조절이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공감대를 높이고 감동을 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쥐어지지 않는 물처럼

안타까운 마음

 

끝까지 가려 계속 걷는데

이상도 이하도 아닌 허탈감

 

석양이 붉게 물들인 지평선

홀연히 나타난 아름다운 궁전

하늘하늘 날리는 옷자락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사라지는 신기루

   -신기루전문

 

  사막에서 걷다 지쳐 오아시스인줄 알고 무작정 가보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는 상황처럼 신기루는 아무런 근거나 현실적 토대가 없는 가공의 사물이나 헛된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허탈하고 안타가운 마음이야 어디에 비길 수 있겠는가.

  현실에 적응한다면서 욕심을 버리고 분수껏 살다가도 내가 아닌 남이 되어 아름다운 궁전에 빠져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사라지는 허상,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렸을 때 느끼는 감성과 뭐가 다를까, 이루질 수 없는 세상의 꿈들이 갖는 맹점(盲點)이다.

  이 시에서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보여주고 뒤를 돌아다보듯 신기루의 본체를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애절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전략이다. 신기루인줄 알면서도 그 것을 목표라는 큰 그림으로 그려놓는 모순을 자행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3.나오는 글

 

  사람은 유년의 가정교육이 평생을 좌우하는 생활 자세를 갖춘다는 말처럼 정의가 아니면 곁에 가까이 접근을 하지 말라는 조부님의 가르침은 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 후 생업으로 지낸 공무원 생활도 청백리로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온 바탕은 투철한 시인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집을 발간하기 전에 쓴 많은 시를 모두 담는 것 보다는 시집이 다소 얇아진다 해도 나은 것으로 선정해서 독자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좋겠다며 몇 번이고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어쭙잖은 글로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신중을 기했다.

  이상구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말하고자하는 내용과 지니고 있는 유사성을 생활 주변의 사물이나 사건을 매체로 선택하여 관찰하고 느끼는 것을 감각을 통해서 비롯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은 곧 자신과의 타협이었다. 기쁜 일이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그 것이 나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를 살폈고 그에 따른 고마움이나 반성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했던 부인과 사별이후 시 칭직 속에서 오랜 시간을 만나 회유하면서 스스로를 위로 했던 모습은 산업사회로 혼탁해진 이 시대에 메말라가는 정서로는 흔치 않은 휴머니스트로 손꼽을 만할 것이다. 또한 적지 않은 나이에 내 몸을 떠나 자식들과 손자들의 화목과 평안은 아직 남아있는 또 다른 창작의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이상구 시인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생활 안에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새롭거나 꾸며지지 않은 일상의 언어 자체를 시어로 선택하고 있어 자연스럽고 독자로 하여금 친숙하게 공감을 얻도록 유도하였다. 이 시인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리며 시집을 읽으면서 당면과제인 코로나19에 대한 불편함을 잊는 여유로움에 다음 시집에 대한 기대에 가슴이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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