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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첵-수필

늘 커피 같은 당신

수필

 

 

늘 커피 같은 당신

 

최문구(수필가)

 

커피를 좋아해서 아침마다 드립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아 차 앞 유리 바로 밑 잔 받침에 올려놓고 한 모금씩 삼키면서 출근한다. 온 몸에 커피가 퍼지면 몸도 맘도 상쾌하다. 늘 피곤한 몸 때문에 아침이 두렵지만, 커피 한잔은 두 눈에 총기를 더해주며 안전한 출근을 도와준다. 이 커피를 29년째 아니, 정확하게 27년째 아침마다 내게 전해주는 사람. 아내와 내가 함께 산다. 입대해서 바로 결혼한 후 군 생활 2년간은 떨어져 지내며 주말에 한번 씩 오가며 부부의 정을 쌓았지만, 늘 갈급한 맘으로 같이 먹던 음식도, 커피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립고 아프고 서글펐던 것 같다.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의 직장 생활 27년째. 아침마다 식사는 걸러도 커피는 거르는 일이 없다. 빵과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 난 사실 커피도 빵도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27년간 부모님과 살면서 아침은 거의 걸렀고 점심은 대학시절 구내식당 밥이 전부. 저녁은 대충 분식류 아니면 라면이 전부였다.

결혼 후 커피는 어메리카노, 빵은 구은 토스트 빵으로 아침을 먹으란다. 첨엔 내가 아침 챙겨 먹으려고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괜히 월급 들고 오는 지식노동자요 정서노동자인 내가 좀 부아가 났다. 아침 달라고 소리도 쳐보고 땡강도 놓고, 단식(?)투쟁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침식사는 내겐 황제들이나 먹는다는 풍문, 아니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 맛없이 쓰디 쓴 드립커피와 토스트 빵이 거의 전부였다.

언제부터인가 이 커피와 빵 한 조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드립을 내릴 때면 커피 향을 느끼고, 빵을 구을 때면 고소한 냄새가 내 머리와 가슴속을 파고들면서 전날의 피곤함과 무료함을 없애고 있다. 특히, 커피는 그 쓴 맛을 달게, 그 신 맛을 깊게 느끼게 내 혀와 구강에서 식도로 내려가는 순간까지 매료시켜 버린 것이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아침마다 드립커피를 손에 들고 빵 한쪽을 씹어대는 내 얼굴과 마주할 땐 불쑥 나 아니 나와 마주한다.

아내는 커피마니아라서 우리 동네 대부분의 커피숍 위치와 로스팅 시간과 종류를 전부 파악하고 말았다. 일주에 두 번을 멀다하고 그 커피숍을 나도 따라 가야한다. 이젠 나도 가서 마셔보지 않은 커피숍까지 마치 가본 듯하다. 이디야 커피, 커피빈, 씨유커피, 홀딩커피, 자바커피, 스타벅스,,,, 오늘 내린 커피는 이디오피아산 일 것이다. 한 달 전부터 맛이 깊고 신맛이 없다. 아내는 커피다.

특별히 쓴맛, 구수한 맛, 당기는 맛, 쌉쌀한 맛이라서 아니라 아내가 커피를 좋아하기에 나는 아내를 커피라고 생각한다. 내 삶에 커피는 딱 두종류 뿐. 아내가 내려주는 커피와 내가 타먹거나 사먹는 다양한 커피. 이렇게 딱 두 종류일 뿐이다. 27년간 내려주는 커피와 그냥 호주머니에서 현금내고 사먹거나 남이 사준 커피. 이렇게 두 종류다. 그래서 나는 커피 애찬가요. 애주가다. 커피찬가도 써보았다.

 

아침에 내리는 커피에/ 아내가 담기고/ 오후에 뒤섞는 인스턴트에/ 일상이 담긴다// 저녁에 휘젓는 카페라테에/ 그리움이 담기고// 커피는 사랑이다 아내처럼/ 늘 곁에 있는 커피// 커피는 아내다/ 아니 아내가 커피다/ 나를 커피 되게 하는/ 커피가 아내다.

 

이쯤 되면 커피는 나의 아내가 되버린듯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면 아내가 궁금해지고 머리와 마음속으로 아내가 떠오른다. 아내의 작전이었나? 하루 종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으므로 커피를 마실 때면 자기를 생각해달라고. 잊지말아달라고... 매일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준 것인가?

하루 24시간. 한 달. 일 년을 보내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얼마나 같이 있었을까? 하루 2시간 남짓.. 일 년이면 720시간. 한 달에 겨우 3일 정도.. 이렇게 바쁜 현대인들에게 아내와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함께 있고 싶어 결혼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면 커피를 생각하며 아내를 떠올리고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맘을 하나로 묶어주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간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아내를 떠올리고, 컴퓨터 모니터 옆의 가족사진을 보며 가족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사랑한다고...더 사랑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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