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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첵-수필

남편의 의자

수필

 

남편의 의자

 

서 동 애(수필가)

 

온라인으로 수강하는 한 매체에서 참 의미 있는 글 한 편을 읽었다. ‘남편의 의자란 제목의 글 내용을 옮기자면 이렇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남편은 늘 귀가가 늦었으며, 어쩌다 집에 있을 때도 식탁이나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읽었다.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공부하거나 놀 수 있었지만, 남편은 느긋하게 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간혹 아이들 방을 기웃거리다 잔소리도 하고 , 별일 아닌 일에 성질을 부렸다. 그러는 남편이 너무 못마땅해서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면서 짜증을 냈다. 아내가 그러자 아이들도 아빠에게 대꾸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바꿀 수 있을까 싶어 부탁도 하고, 잔소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럴수록 남편은 밖으로 겉돌거나 화를 자주 냈으며, 아이들도 아빠를 싫어했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집안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잃은 남편이 딱한 아내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남편이 집안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남편만이 앉을 수 있는 좋은 의자 하나를 마련했다. 그 의자에는 남편이 있든 없든 누구도 앉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그 의자에 앉는 것을 남편도 어색해하였고, 아이들과 방문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 원칙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효과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남편이 달라졌다. 가장으로서 권위를 인정받는 것 같아서 그런지 남편의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다른 가족에게 간섭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사라졌다. 부부싸움도 없어졌고, 특히 아내를 존중하고 인정해주었다.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도 달라졌다. 아빠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아빠부터 챙겼다. 또한, 아이들끼리 싸우는 일도 없어졌다. 누가 시키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각자 할 일을 해서 부모의 기대대로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다. 지금도 그 의자는 집안에 그대로 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딸도 결혼 후에는 엄마처럼 멋진 남편의 의자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읽는 내내 깊은 감명과 깨달음을 받았다. 그리고 반성도 했다. 요즘처럼 남편의 위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가장의 권위를 지켜준 그 아내가 얼마나 지혜롭게 보였는지 모른다.

자녀 6 남매가 모두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주류사회에서 훌륭하게 활동하도록 잘 키운 전혜성 박사의 자녀교육방법이 생각났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자녀에게 남편의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너무나 못마땅해서 남편과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럴수록 아이들과 아빠의 관계가 점점 더 나빠졌다. 전 박사는 남편을 바꾸는 것보다 아이들을 바로 가르치는 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의 말에 아이들이 반발하면 일단 아빠 말씀이 옳다.”면서 남편을 지지한 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남편의 말을 보완해서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아빠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면서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자 남편도 자신을 존중해주고 더욱 도와주었다. 아이들도 아빠에게 순종하면서 아빠와의 관계가 매우 좋아졌다. 전 박사는 자녀를 잘 키우고 싶다면 먼저 남편이 아빠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권위를 존중하라. 서로 존중하는 부부가 부모로 성공한다.”고 했다.

대학에서 청소년 교육학을 공부할 때, 자식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어릴 적, 아버지와 맺어진 애착 관계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다. 이만큼 아버지와 자녀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엄마는 자녀에게 신과 같은 존재란다. 엄마가 무시하는 사람을 자녀도 무시하고, 엄마가 존중하는 사람을 자녀도 존중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면 아버지인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 권위는 아내가 세우고, 그러면 남편도 아내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인정할 때 자녀도 부모를 존경하고 따라준다고 했다.

이 글을 통해 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모습은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다. 질서가 무너지고 가치관이 흔들리는 세상이라도 가장의 권위가 있는 가정에서는 자녀가 올바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무엇보다 가정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본이며, 그 기본은 배우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주춧돌 하나에 건물의 안전이 좌우되듯, 남편의 의자가 가정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시작인 걸 왜 세상 모든 아내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남편도 나름이고 아내도 나름이라는 친구 L 이 늘 하던 말이 있다. 그의 남편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가부장적이고 고집이 더 세서 황혼이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작 결혼 초부터 남편을 그렇게 만든 건 자신이라며 후회 아닌 후회를 하는 그가 참 아내가 아닌가 싶다.

가끔은 미운 남편의 흉을 딸에게 털어놓았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남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 남편을 절대권자에서 내려올 마음이 전혀 없으니 남편의 의자가 필요하지 않지만, 며칠 후에 있는 부부의 날에는 내가 먼저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남편에게 선물해야겠다. 그리고 이 기회에 아내의 의자, 근사한 내 의자도 하나 만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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