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칼럼

사람이 산다는 것

사람이 산다는 것

   - 여동생을 보내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숨을 쉬고 움직이는 생물로써 존재하는 동안까지를 살아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흡이 멈추고 돌아오지 못할 때 한 사람으로써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그 시점을 전후로 해서 존재의 가치는 냉정하게 급감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애지중지하던 물건들마저 삶을 같이 하던 사람들에게 똑같이 소중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버려지는 것이다. 그 것들을 가지고 갈 수 없으나 필요에 의해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생전의 인연이 그리 길지도 않은 것을 만나기를 미루고 미루다 알지 못하는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420일 아침에 여동생 사망 연락을 받았다. 매제로부터 요양원에 입원해있다는 연락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대전에 내려가 병문안을 벼르다 다녀오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전국이 들썩였던 터라 3월 상순에 아버님 생신을 축하해드렸던 오찬모임도 잠정적으로 미뤘다가 2주일 전 바로 아래 동생 제수가 간암으로 세상을 떴을 때도 요양원이 면회가 안 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부담스럽지 않으면 다시 시간을 내자고 벼르다가 이젠 더 이상 기회가 없어졌다. 내외는 다음날 오전에 문상을 갔다. 입관 절차를 보면서 가슴이 메었다. 어린 시절에 함께 자랐던 모습에서부터 결혼 준비단계나 잘 살아보려 애쓰던 사연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지나갔다.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병명을 모른 채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깡마른 시신을 바라보며 매제와 시댁 가족, 우리 형제 내외와 동기간이 함께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차디찬 몸으로 이승과의 하직은 입관으로 종료된 것이다. 요즘 나이로는 좀 이른 64세 로 슬픔은 한결 더 했다

  조카아이 하나가 상주가 되어 어머니 장례식장을 지키고 직장 동료들의 문상을 받았고 매제도 옆에서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를 맞이했다. 문상을 온 조문객들은 상을 당한 본인을 위로하기 위해 참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상을 당했을 때 입장을 바꿔 문상을 와주기를 바라는 계산이 함께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만날 수 없었던 친구나 동기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서울에서는 문상객들이 자리의 4분지 1을 차지하는 것을 보았으나 대전에서는 거의 찰 정도로 많이 와주었다. 물론 자녀들이 젊다보니 보다 적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곳 장례식장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아침에 발인제사로 시작하여 대전정수원 추모공원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오전 11시에 화장이 시작되어 12시가 넘어 종료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 흔적을 한 줌 흙으로 남겼다. 그리고 구봉산자락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곳 대전 시립 납골당 대전추모공원 유리봉안함에 안치되었다. 아프지 않은 새 세상에서는 편하게 잘 지내기를 빌어주었다.

  먼저 건립된 다른 거물동 납골당 건물에 20091월에 안치된 막내 여동생을 찾았다. 폐질환으로 51세로 생을 마감했다. 엊그제 고인이 된 여동생이 손아래 이곳 동생을 생전에 지극정성으로 찾았었다. 5남매 32녀 중 아래 두 여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두 동생을 가슴에 묻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는 하지 않으나 동기간이나 지인을 통해서 기억 속에 남을 뿐이다. 살아있어야만 이 세상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의 생애는 살아가는 평생 동안이다. 온전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를 말한다. 장례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피곤한 몸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모두의 건강을 빌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삼가 여동생의 명복을 빌어본다.

   

2020년 4월 하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