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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탐방

윤동주문학관을 찾아서

윤동주문학관을 찾아서

 




1.들어가는 글

 

윤 제 철



  20161118일 금요일 오전 1130, 성동구민대학 시 창작교실 회원들은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안에서 모여 점심식사를 마치고 문학관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난번 미사리 팔당호와 미당 서정주의 집에 다녀오고 나서 세 번째 나들이였다.

  참석하신 분은 유병란 총무, 강기영님, 권항기님, 김옥자님, 김정희님, 김현주님, 온혜영, 이명희님, 허성열님, 그리고 필자였다. 윤효숙님은 현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오시기로 약속하셨던 김상환님과 최인선님은 뜻하지 않은 일로 못 오셨다.

 오전 1150분쯤 경복궁역에서 나와 마마설렁탕집으로 들어가 잠심을 먹었다. 권항기님께서 선뜻 식대를 내주신다는 선언에 분위기가 훨씬 화기가 돌았다. 깎두기와 배추김치 등 밑반찬이 나오면서 설렁탕과 밥이 들어와 대화가 오갔고 모처럼의 야외탐방이 활기를 띄었다.

 

2.뮨동주문학관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에서 1020번 버스를 타고 문학관으로 달렸다. 다른 지역 문학관과는 달리 조용하지만 문학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문학관이 있다.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이 바로 그곳이다. 청와대 옆길을 지나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한양 도성 4소문(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흰색 건물이 윤동주 문학관이다.

  부암동과 청운동이 맞붙어 있는 이곳은 서촌의 끝이다.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들의 문학인 위항문학이 꽃핀 곳이었고, 1930년대부터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노천명과 윤동주와 이상, 소설가 현진건 등 근대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윤동주는 당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다녔는데, 태평양전쟁으로 기숙사의 식사가 부실해지자, 종로구 누상동에 살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고 한다. 같이 하숙했던 후배 정병욱은 윤동주가 김송의 가족과 함께 식사도 하고, 친구들과 대청에 앉아 차를 마시는가 하면, 성악가였던 김송의 아내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시인 윤동주에게는 서촌에서 지낸 이 시기가 황금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인연으로 문학관을 이곳에 새운 것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바로 이 언덕의 입구에 있다. 2009년까지 수도 가압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용도를 다하면서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를 연계하여 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심하던 종로구는 수도가압장의 기계실이자 관리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임시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 문학관이지 허름한 1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에 간판만 바꿔 단 격이었다. 그러다 20116월 건축가 이소진(아뜰리에 리옹 서울 대표)에게 설계를 맡기게 되었다.

 

3.윤동주 시인

 






  19171230일 태어나 1945216일 사망하였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1936년 카톨릭 소년지, 동시병아리데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시인 윤동주,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음울하고 가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 반드시 여명은 오리라 믿고 써내려간 주옥같은 시어들은 오늘날까지해맑은 영혼의 징표로 남아 있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윤동주를일제 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생전에 그는 유명 시인도 아니었고 독립투쟁의 목소리를 높이던 열혈청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100여 편의 시는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윤동주(尹東柱)191712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명동학교 교원이었던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3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이다. 그가 태어나기 석 달 전이었던 928, 친정에서 살던 고모 윤신영이 아들 송몽규를 낳았다. 고종사촌 관계인윤동주와 송몽규는 그렇듯 한집에서 태어나 후일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4.윤동주 시인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는 시자화상(畵像自)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의 자화상(畵像自) 전문 *19399월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윤동주의내면성찰에 관한 시들중에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다.산모퉁이를 돌고 돌 만큼 힘들게 자아성찰을 하며 찾아간 우물 속에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는 표현에서 서정적이면서도 윤동주의 내면을 거울에 비치듯 투명하게 표현했다. 또 그 풍경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표현한 것에서 흘러왔고 지금도 흘러가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자기 자신을 시에 등장시켜 생소하면서도 내면성찰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바로한 사나이'의 등장과 그 사나이에 대한 반응이다.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하는 표현자기 자신에 대하여 가엾어지고 미워지고 그리워지는 전개에서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는 모습을 굉장히 차분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연에서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언어선택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미워졌던 자기 자신이 추억처럼 있다는 것에서자신이 원하는 내면으로 갈고 닦는 의미로 나타난다. 이 처럼 자신의 내면성찰을 서정적이고 차분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 윤동주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 성찰 : 자신의 일을 반성하며 깊이 살핌

 

5.나오는 글


 

  애국이란 반드시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총을 들고나가 싸우거나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오는 것만이 아니다. 독립운동에 나서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자신을 반성하며 깊이 살폈던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쓴 시를 통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이라 평가하고 싶다. 독립된 나라에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국민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애국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시국에 직면해있는 요즘에도 현실을 직시하고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우왕좌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명한 판단으로 국익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에 대한 수습에 허둥대지 말고 다시는 잘못되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계기로 삼고 윤택한 생활을 보전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사진의 일부는 윤효숙님께서 촬영하신 것을 사용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