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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칼럼

대전고49회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상기하면서

대전고49회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상기하면서



윤 제 철


1.들어가는 글


  1970년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49회 동창회는 열성을 다한 동문들에 의해 이어왔다. 대전에서 서울에서 인연을 잊지 않고 애써준 덕분에 생업일선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활력을 찾아 생활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학창시절 중에서 고등학교시절을 잊을 수 없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가장 순수했고 꿈이 많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학시절만 하더라도 전공이 같아 경쟁대상이 되어 계산적인 양상으로 바뀌었지만 고등학교 동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생활체험들을 주고받으며 어울릴 수 있는 폭이 넓었던 것도 사실이다.

  2015년 12월 3일 목요일 오후 6시 삼각지 육군회관에서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전임회장 이재성과 신임회장 이상헌이 이취임을 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회칙을 바꾸어 동기모임을 한 달에 두 번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부에선 반신반의했으나 1월과 2월의 두 차례 모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박수를 보내야할 일이다. 앞에서 이끌면 뒤에서 밀어줘야한다.


2.졸업 30주년 기념행사


  나이가 50전 후였던 그때 대전고 제 49회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했던 2000년 4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모교강당현장의 뜨거웠던 열기가 새삼 2016년 3월을 맞으면서 기억이 새롭게 났다.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었던 동창회 모임 중에 하나였다.

  성석만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서 국민의례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1절), 순국선열과 고인이 된 동문을 위한 묵념에 이어 은사 및 내빈 소개가 있었다. 어떤 분이 참석을 하셨는지는 분명하진 않지만 10여분으로 당시 유인물 주소록엔 조남익, 안명호, 김철호, 이현원, 성선제, 이준희, 신명수, 정병섭, 염석운, 백남직, 강신행, 임만기, 김용구, 이종윤, 박정웅, 임헌동, 조성대, 이광희, 권선영, 이종관, 이기영 선생님의 성함과 전화번호와 주소가 기록되어 있건만 16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고인이 되신 은사님도 여럿이니 무상하기만하다. 더구나 고인이 된 동문들도 기억에 남아있다.

  기념사를 한 49회 동창 송영호 회장과 재경 백오현 회장은 입을 모아「이제는 우리도 한마음 한뜻으로 모일 때」라고 했다. 당시 대전고총동창회 박종윤 회장은「49회 동문 여러분의 졸업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대전고의 자긍심을 유지하고 계승하는 뜻 깊은 모임으로 숭고한 일이며 미풍양속이라 하고 임원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면서 동문 여러분의 가정마다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모교 안태영 교장은 축사를 통해「세월과 우정과 인생의 상호관계를 반추하며 모인 자리에서 동심의 우정을 재확인하고 여생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나가 달라고 했다」

  대전과 서울 그리고 타 지역에서 모인 동문 중에는 부부동반 한 경우까지 모두 300여명이나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필자도 헌시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남팔아」를 낭송하였다.「소식이 끊겨 지워져버린 우정을 그리고/ 인생의 길을 열어주신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다 윤택한 삶으로 살찌도록/ 남팔아 남아의 기백으로 찾아야지」그리고 은사님께 선물 증정과 운동부 격려금을 전달하였다.

  언제나 교가제창은 마지막이며 클라이막스를 차지했다. 그 시절 그 노래였다. 오른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내리면서 힘차게 부르는 노래였다. 마치 무슨 다짐이나 출정이라도 하듯이 비장하기만 하였다.

  2부순서는 중식 및 기념촬영(12:30-14:30), 3부는 만남과 어울림의 한마당(14:30-17:30)으로 초청연예인 공연, 장기 및 노래자랑, 행운권 추첨이 마련되었다.



3.나가는 글


  우리의 만남은 소년사절의 얼굴로 만나기 때문에 만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젊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을 놓을 수 있어 좋고 일상의 근심을 잠시 덜어놓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차피 인생은 동심을 갖고 산다. 자식들이나 젊은이들이 곁에 있을 때나 어른이지 없으면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른노릇하지 말자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존재감이 없으면 소외감을 갖고 우울해진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일을 만들어 해야 한다. 꼭 돈을 벌어야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봉사활동도 좋지만 하고 싶은 걸로 찾아볼 일이다.

  여생은 예전 보다 너무나 길어졌다. 퇴임 후 얼마 안 되어 생을 마감했던 시절과는 다르다. 직장에 나갈 때와 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30-40분 정도의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집에만 있을 수도 없다. 나름대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한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