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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강의(운문)

24.준비를 위한 시 - 필자

24.시는 어떻게 쓰나?

 

몸을 가르니/ 가득 차 있는 노오란 별빛 달빛/

한입 베어 무니/ 농부의 수고가 가슴 깊이 전해오네//

소금에 나긋나긋 절여/ 찹쌀 죽에 멸치 새우젓으로 밑그림하고//

파 마늘, 무채 갓 등으로 수를 놓은/ 빨강 옷을 입으니

3.어디서나 행복을 주는 귀한 몸이라오/ 1.뜨거움도 매움도 끌어 안아

2.따끈함을 주는 구들처럼....

- 김현주의「김장」전문 3-00

 

김장을 해본 사람이면 현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노오란 속고갱이가 별빛 달빛이다. 소금에 절여 찹쌀 죽, 멸치, 새우젓 밑그림하고 파, 마늘, 무채 갓으로 수놓은 빨강 옷 입으면 김치가 되고 행복을 주는 몸, 따끈함을 주는 구들처럼 된다.

3연에서「빨강 옷 입으니 (김장을 해놓으니) 뜨거움도 매움도 끓어 안아 따끈함을 주는 구들처럼 어디서나 행복을 주는 귀한 몸이라오」가 좋다. 그냥 두었을 때는 도치가 되어 괜찮은 듯 보이나「빨강 옷을 입으니」에서 바로 그 맛으로 표현되는 것이 낫다.

찌든 형상 속에서도/ 웃음 띤 삶의 미소 잃지 않는/ 소금장수 소꼽친구//

논두렁 내음/ 바람결에 솔솔 드리우는 날/ 큰 고목나무 밑

소금지게 받쳐 놓고 마주 앉은 옛 친구//

부어라 따르랴/ 부딪치는 술잔 속에/ 추억을 부어 마시는 진한 우정의 향연//

온정이 교차하는/ 하염없는 옛 추억담 속에/ 석양 해는 저물어 가는 시간

이 순간의 추억 언제 다시 찾을까//

너와 나,/ 이제 눈시울 붉히며/ 아쉬움 남기고 떠나야 하네

저 석양을 삼킬 수 만 있다면/ 흐르는 시간을 되돌려

한없이 마주하고 싶다 친구야 !

- 이석남의「술의 향연」전문 9-11

 

소금장수 소꼽친구를 만나 소금지게 받쳐놓고 마주 앉아 추억을 부어 마시는 술자리, 눈시울 붉히며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야할 시간, 석양을 삼킬 수만 있다면 한 없이 시간을 돌려 마주하고 싶은 심정을 담고 있다.

웃음 띤 삶의 미소는「웃음」과「미소」가 겹치고 있다.「가는 시간」과「이 순간」의 의미가 엉키고 있다.「이제」는「바로 이 때」라는 의미를 지닌 시어가 필요하지 않다.「친구야 !」는 이미 앞부분에서 부터 만나고 있어 다시 부를 이유는 없다.

억/ ./ 1억, 2억..../ 복덕방마다 똑같은 신음소리//

아들놈 신혼 방, 월세가 부담스러워/ 전세방 찾는데 억, 억이다.//

아들놈, 오토바이 길가에 세워두고/ 엄마 잠깐만 하더니 잠시 후

로또복권 샀어 하며 피식 웃는다/ 이천 원, 그거면 콩나물 반찬으로

한 끼 너끈히 먹을 텐데....//

또다시 싼 방 찾아 헤매는 모자의 등은/ 칼바람에 더욱 구부러지고//

이천 원//

꿈과 미안함, 씁쓸함이/ 눈이 되어 방울방울 날리고 있다.

- 김현주의「전세방 구하러 다니며」전문 11-20

 

아들을 장가보내려는 어머니의 걱정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신혼 방 하나 찾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로또복권으로 잠시의 신음을 잊어보려는 아들이지만 이천 원의 기대감도 부질없어 아까울 뿐이다.「미안함과 씁쓸함이 눈이 되어 방울방울 날리고 있다.」

앞에「아들놈은」뒤에「엄마 잠깐 만」으로 없어도 알 수가 있다.「잠시 후」도 서술로 보인다. 없어도 그냥 이어지는 상황이다. 복권을 사고 찾아보는 전세방은 응당 다시 찾아보는 것이다. 함축이란 하나의 시어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자 하는 것이다.

 

서성이던 나뭇잎은/ 바싹 말라서 바람에 실려 가고

금빛 너울을 세월에게 준 갈대는/ 머리도 못 빗은 채 주저앉았네//

트리의 오색등이 외로운 마음을/감사함으로 달래주고

적은 것에 만족하는 달력은/ 마음의 부자로 펄럭이는구나//

추위를 감싼(웅크린) 발걸음들이/ 입김을 내 뿜으며

겨울로 겨울로/ 걸어가고 있네

- 이옥희의「겨울이 오고 있네」전문 12-11

 

낙엽은 서성이다 말라 바람에 실려 갔다. 갈대는 머리도 못 빗고 주저앉았다. 트리의 오색등은 감사함을, 적은 것에 만족하는 달력은 부자의 마음을 가졌다. 추위를 감싼 발걸음은 입김을 내뿜으며 겨울로 걸어가고 있다.

「적은 것에 만족하는 달력」이야말로 부자다.「마음의 부자」라고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 추위를 감싼 발걸음 보다는 웅크린 발걸음이 좋다. 1연에서 바람에 실려 가고, 머라도 못 벗은 채 주저앉았다. 2연에서 달래주고와 펄럭였다. 3연에서 발걸음들이 입김을 내뿜으며, 겨울로 겨울로 가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시간들을 뒤로 하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겨울//

일궈놓은 수확을 누리면서/ 놀기 만하는 계절로/ 맞을 수만은 없다//

어른 노릇 하지 말고/ 내일을 내가 하는/ 젊은 시절로 만들어야 하고//

눈총을 맞으면서 밥이나 축내지 말고/ 넘어지지 않도록 준비하여

아직도 많은 날들을/ 무언가 쓸모 있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 윤제철의「겨울준비」전문

 

인생에 있어 봄, 여름, 가을을 살아왔다. 이제 남은 겨울을 준비하고자 한다. 일궈놓은 것만 누리며 놀기만 하지 말고 내일을 내가 하는 젊은 시절로 만들어, 밥이나 축내지 말고 넘어지지 말아야한다. 아직 남은 많은 날들을 무언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생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수만은 없다. 예나 다름없이 내일은 내가 해나가는 마음가짐으로 살면서 남에게 짐이 되지 말고 부딪히지 않도록 참고 견디는 생활자세로 넘어지지 않는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