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7월 여름 월문리 3박 일지
첫째 날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던 5월말 쯤 여행휴가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가족은 와부 월문3리에 위치한 처갓집에 장인장모님께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비어있는 전세방에 며칠 묵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해마다 큰 처제와 같이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덕소에 사는 막내 처제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대전에 있는 동생들과는 멀다는 핑계로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날씨가 우중충한 아침이었다. 오전 10시까지 덕소로 모이기로 하였지만 팔당대교 주변은 휴가객승용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예정 보다 지체 되었으나 참석 인원 모두가 밝은 얼굴로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그 지역에 대하여 잘 아는 막내 처제의 계획대로 시행하였다. 그런데 고기 굽는데 필요한 불판이 월문리에 있어 차량 두 대가 움직여야 했다. 그곳에서 불판만 가져오기로 했다가 동내 정자를 발견하고 간단히 먹자고 자리를 마련하였다. 앉아보니 날은 덥고 냄새가 진동할 것 같아 보류하고 다시 덕소 인근 계곡으로 옮겨야했다.
계곡은 퍽 마음에 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 물가에는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앉아 즐기고 있었다. 구름 낀 날씨는 이따금 비도 잠시 구경시켜주면서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큰 처제는 입대한 조카 병일이와 대학 다니는 병두가 같이 왔고, 막내 처제는 고등학교 다니는 조카 휘현이와 중학교 다니는 가슬이 그리고 늦둥이 보현이가 같이 있었다.
취사금지라는 프랜카드가 걸려있음에도 석쇠 위에 고기를 구웠다. 연탄불 붙이는 것을 불을 붙여 화력이 엄청나 손가락이 후끈거렸다. 미리 준비를 다 해온 막내 처제 덕분에 좋은 점심식사가 되었다. 조카아이들은 발을 걷고 물에 들어가 꼬마 보현이를 잘 데리고 놀았다. 나도 발을 걷고 돌 위에 앉아 계곡 주변을 바라보았다.
더위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짐을 챙겨 처제네 아파트에 차를 대놓고 강변으로 나갔다. 하남을 강 건너편에 두고 있는 덕소는 서울이나 다름이 없었다. 강변도로를 조카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우리는 도보로 걷기운동을 하였다. 꼬마 보현이도 세발자전거를 끈질기게 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잘 갖추어져 있는 농구장이며 축구장을 바라보며 앉아서 쉬었다. 이곳 아파트들은 가까운 곳에 계곡이나 강바람을 쐴 수 있어서 좋겠다싶었다. 아파트로 돌아와 8시쯤 되니 막내동서가 학교 방과 후 수업을 맞추고 돌아왔다.
일행은 강변도로를 타고 전통 보리밥집으로 달려갔다. 많은 수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강바람을 맞으며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미사리 방향에 새로 놓는 교각이 경춘 고속도로로 추정되었다. 이 고속도로가 서종면으로 지나가는 길인 듯 개통되기를 바랐다.
어둠을 뚫고 두 집 가족은 월문리로 향했다. 방안은 그 동안 열어 놓지 않아 점심 때 열어놓고 나왔는데도 곰팡이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방바닥과 거실바닥을 걸레질하고 식탁이나 의자에 먼지나 곰팡이를 닦아야 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빈 방의 모습을 실감했다. 그리고 집은 있으되 몸이 편치 않으셔서 오시지 못하시는 두 분의 형편이 너무나 측은 하셨다. 오시고 싶으셔서 불편한 몸으로도 억지를 피시던 장인어른의 모습이 어른거려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밖으로 나왔다. 막내 처제가 오기 전에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제 밤에 들어오던 입구에 월문 5리 이정표는 이곳 동네가 아니었다. 이곳은 월문 3리 이고 안으로 훨씬 더 들어가야 월문 5리가 나왔다. 밭에는 파며 포도가 심어져 있었고 더러 옥수수나 콩이 눈에 띄었다. 벼가 자라고 있을 논이 보기 힘들었다. 겨우 애견 훈련소를 돌아 나와 눈치 보며 끼어 있는 좁은 논을 볼 수 있었다. 걱정을 하고 있는 데 네가 무얼 안다고 그러냐며 쫓아내는 우렁찬 애견들의 짖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나와 마을 입구에 있는 노인정에 눈길을 두니 의자들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 노인들이 쉬어가신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처제는 고친 차가 다시 고장 나는 바람에 아침 7시가 지나서야 동서 차로 동네 삼거리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차로 나갔다. 동서는 다른 약속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조카아이들과 함께 내 차로 가기로 했다.
오늘 여행지는 연인산 계곡이었다. 춘천 가는 46번 국도로 들어가서 대성리를 지나 가평 쪽으로 가다가 왼편으로 연인산 방향으로 나왔다. 조금 가다가 아침 식사를 위해 부대찌개를 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9시 쯤 되었다. 구름에 가려진 날씨는 물놀이하기에 적절하게 맞춰주었다.
일찍 도착한 일행은 물가 좋은 자리에 좌대를 설치하고 준비한 튜브를 공기를 넣어 띄우고 노는 조카아이들을 보았다. 꼬마 보현이는 큰 돌을 물에 쌓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노는데 열중하였다. 물은 차갑고 맑아 좋았다. 가까운 곳에 수심이 깊은지 녹색을 하고 있었다.
잠시 누워 쉬었다. 그리고 연인산 산책을 큰 처제, 조카 병일이와 함께 넷이 나섰다. 한참을 차로 올라가 주차하고 걸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그곳의 물은 아래 것 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이 시렸다. 머리도 적시고 발도 당구고 땀을 쫓아냈다. 물가에 바위들이 넓적하여 앉기도 편하였다.
아래로 내려오다가 건너편으로 들어가는 길이 궁금하여 아내와 둘이 처제를 그늘에 기다리게 하고 들어갔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많았고 정식 산책로로 낸 길이었다. 건너편 길과 연결되는 곳까지 올라가는 코스였다. 아래 계곡에서 점심식사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얼마쯤 갔을까?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아저씨 모습이 멀리 보였다. 과속방지 턱을 넘으면서 바운드되듯이 퉁퉁 튀더니 길바닥 아래로 떨어지면서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꼼짝을 않고 누워있었다. 멀리 떨어진 위치에 차를 세우고 119로 연락을 취하자 이미 접수되었다며 더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왔다. 가까이에 있는 집 안에서 아저씨가 나오고 지나가던 차에서 또 다른 아저씨가 내려서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차에서 내려 그 곳에 가보니 환자는 피를 흘리며 누어서 눈을 뜨고 있었다. 119에서 오고 있는데 피서철이라 지체되어 늦는다는 말도 전달해주었다. 무작정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먼저 가겠노라고 말하고 그곳을 떠나야했다. 고맙다는 말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하신 것을 보아 이웃 사람으로 여겨졌다.
아래 계곡으로 와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물가에서 끓인 라면은 나름대로 맛을 돋구어주었다. 사람들도 무척 많아져 좌대 앞으로 걸어 올라가 위에서부터 튜브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시 물에 발을 담그고 맥주를 한 캔 마시며 계곡을 즐겼다.
병일이가 부천에 약속이 있어 먼저 보내야 했기에 일행은 오후4시가 넘어 계곡을 떠나야했다. 막내 처제도 내일 동해로 떠난다며 덕소로 가야했다. 월문리에 큰 처제, 조카 병두 그리고 아내를 남기고 나는 도심역으로 향했다. 조카 병일을 내려주고 아파트로 가서 수박을 반으로 잘라주는 걸 받아갖고 월문리로 갔다.
저녁 식사를 어제 먹던 곳 주변 식당으로 찾아가 먹자고 했다. 콩나물밥집으로 들어가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맞으며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시킨 빈대떡 하나로 배부른 저녁식사가 되어버렸다. 강변으로 나와 40여 분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과자와 물을 먹는 하마 몇 개를 샀다. 곰팡이 핀 장롱 안에 넣어두기 위해서였다. 내일 폭풍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린다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큰 처제가 말했지만 나는 상황을 보아서 내일 아침에 결정하자고 했다.
셋째 날
비가 몹시 내리는 날이었다. 처제 말대로 어제 밤에 올라갈 것을 그랬나 싶었다. 처제는 할 일도 있고 비가 오니 그냥 올라가겠다고 했다. 결국 셋째 날은 우리 내외만의 시간을 설계해야했다. 서종면 쪽으로 가서 정배리를 둘러보고 싶었다. 가던 중에 대학동창 성열학이 전원주택을 짓고 산다는 데를 가고 싶어져 전화를 했더니 밖에 나와 있다하여 다음으로 미루어야했다.
정배리를 둘러보았으나 변함없이 풀만 무성하였다. 산위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 노문리로 향하는 산속숲길을 드라이브하였다. 환상적인 나무들의 속삭임을 들어가면서 달리는 맛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길이 좁아지는 바람에 망설임으로 직진, 직진하여 코스를 밟아야했다.
도중에 딸아이 혜경이 한테 전화가 왔다. 중학교 단짝 친구 아이들 둘이 우리집에 와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수영장을 놀러가기로 했다는 통보였다. 미리 아무런 말도 없이 멋대로 정하고 나서 그렇게 해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월문리에서 묵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단골로 감상해온 가일 미술관을 들렸다. 간밤에 얼마나 비가 왔는지 북한강물은 흙탕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산을 쓰고 움직여야한 강변 음악당 벤치에 앉아 북한강이란 시를 쓰던 그 때를 더듬었다.
점심식사를 위하여 찾아간 이천쌀밥 집이었다. 생각보다는 상당히 고급스런 집이었다. 갈치조림이며 곁들인 반찬이 입맛에 맞았다. 다시 한 번 쯤 들리고 싶은 식당으로 남았다. 비는 오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아쉬운가보다 햇살을 가려줘 고맙기만 하다.
가던 길에 남이섬이야기를 아내가 꺼냈다. 잠깐이면 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어제 갔던 연인산 입구를 지나 얼마 안 들어가면 남이섬이라 생각되었다. 비가 오지만 남이섬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을 와 봐도 올 때마다 다른 감흥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소나무가 줄을 서서 반갑게 맞아주는 남이섬은 섬 밖과는 매우 다른 맛을 느낀다. 무언가 밖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것들이 숨어 있는 섬이다. 많은 볼거리를 살펴보고 지나치는데「해와 달」이라는 듀엣가수의 공연을 외부무대에서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가사말로 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가창력이 꽤있어 보였다.
혼자 타는 자전거를 비롯해 여럿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자전거를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나란히 쭉쭉 뻗은 모습이 아직도 겨울연가의 연인이 자전거를 달려 나올 것만 같았다.
나오는 길에 다시「해와 달」의 카페공연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난 그들의 노래에 끌려 만원을 주고 둘이서 음료를 마시며 즐길 수가 있었다. 소박한 그들의 삶을 노래로 더 듣고 싶었다. 몇 사람 안 되더니 시간이 가면서 외국 사람들까지 자리를 같이 하여 즐기고 있었다. 나오면서 연락처를 받아들고 좋은 글을 주고 싶다고 인사로 대신했다.
도자기 작가의 세계를 엿보고, 그림으로 표현한 예술의 세계를 걸으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미소 속에 담긴 영혼들을 마주하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탈 것 같다 생각했지만 한꺼번에 큰 배를 타고 빠져나왔다. 비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번한 날이 더욱더 빛나는 순간이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무척 많은 차량이 거북이걸음을 하다가 비가 마구내리다가 빨리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였다. 어두운 길이 된 것은 남양주 쪽으로 들어서면서였다. 비가 오더라도 조금씩 내려 와부로 들어서는 고갯길을 넘어갈 때는 참아주었으면 했건만 오히려 어깃장을 피우는지 더욱 더 굵어진 빗줄기는 우중에 가로등으로 얼비치는 중안선 마저 잘 보이지 않았다. 가파르고 굽이가 많은 길이었다.
그곳을 무사히 내려와 월문리 보리밥집으로 들어가는 데는 우산을 써야했다. 이웃에 있는 집이라 우습게보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정식 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손님으로 방마다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하루를 보일러를 켜고 환기를 더 시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보람마저 느끼며 하루를 더 보내는 밤이었고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오셔서 장인 장모님께서 생활하실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한 밤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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